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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Feb 23. 2023

위로받으려 꺼낸 말에 태도를 배운 아침

빨리 올라가는 게 중요하지 않은 때도 있다

"다음 달엔 양팔 접영까지 배우신 분들은 윗반으로 올라갑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언제쯤 올라가나 기다리고 있던 찰나에 선생님의 말은 무척 반가웠다. 계속 같은 동작을 반복해 지겹기도 했고 배워도 발전이 없다 느끼던 시기였으니까. 2월 중순,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다시 의욕의 불씨가 타올랐다. 불씨는 평소보다 2배 속도로 물을 젓게 했다.


그런데 어제 수영장에서 수업 끝날 때쯤 선생님은 이렇게 얘기했다.


"제가 오리발 사라고 한 분들은 3월 수업에 꼭 오리발 챙겨 오세요."

지난 월요일에 수업에 빠져 오리발을 사라는 얘길 못 들었다. 선생님께 물었다. 오리발은 어디서 사냐고, 어떤 브랜드를 사면 되냐고. 선생님은 내 질문에 당황한 얼굴로 변했다. 그러면서 오른손으로 내 왼쪽 어깨에 손을 올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회원님은 조금 더 하고 올라오세요."


욱하는 감정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양팔 접영 배운 사람은 윗반으로 올려준다 해놓고 이제 와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욱하는 감정은 내 표정에 드러날까 감추려고 애썼는데 감춰졌는지 잘 모르겠다. 수업을 마치고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가며 많은 생각을 했다. 갑자기 수영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 해도 해도 발전이 없는 수영을 왜 해야 하냐는 생각, 어제 결재한 3월 강습을 취소해야겠다는 생각 등등. 집에 와서도 분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얼마 전 구매한 헤네시 위스키를 다 마시고 자야 분도 풀리고 잠도 올 것 같았다. 하지만 늦은 시간이라 침대에 누워 눈을 질끈 감았다. 여러 번 뒤척이다 겨우 잠들고 말았다.


"나, 수영 진급에서 누락됐어."


아침에 마주한 친동생에게 얘길 꺼냈다. 동생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이렇게 얘기했다.


"나도 전에 누락된 적 있어. 하루 수업 안 나갔는데 내 뒤에 있던 세 사람이 나보다 먼저 진급했었어. 그런데 수영에선 빨리 올라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동생도 나와 같은 경험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 수영에서 빨리 올라가는 게 중요하지 아니라는 다음 말에 궁금증이 생겨 되물었다.


"그럼 뭐가 중요한데."
"빨리 올라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힘 안 들이고 잘 가는 것, 수평 뜨기, 안 되는 걸 포기하지 않는 것?"


듣고 보니 그랬다. 아니 동생의 말이 맞았다. 승급은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할 수 있다. 승급보다 더 중요한 건 개인 실력이다. 동생은 일주일에 5일 수영한다. 상급반이다. 시작은 둘 다 비슷하게 했지만 현재 속한 반은 전혀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마음 내키면 가고 안 내키면 안 가는 '날라리 회원'인 반면 동생은 '열심 회원'이다. 동생에게 위로받으려 꺼낸 말에 되려 수영을 대하는 태도를 배운 아침이다.


배웠다고 다 내 것이 되진 않는다. 배운 것을 무수히 반복 연습해야 내 것이 된다. 세상에는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고 빨리 가지 않는 게 중요할 때도 있다. 빨리 올라가는 것에만 집중해 욱했던 어제 나의 오류를 발견했다. 승급에만 집중해 정작 더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중요한 건 승급이 아니라 나의 실력이었다. 얼마나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느냐였다.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걸 머리론 알면서 실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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