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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도 놀이가 될 수 있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그냥 쓰기, 일단 생각 꺼내기 연습

by 오류 정석헌

글쓰기도 놀이가 될 수 있을까? 만약 글쓰기를 놀이처럼 한다면 어떻게 될까? 형식을 갖추기 않고 자유롭게 떠오르는 그대로 쓴다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매일 아침 7시 30분, 누군가는 출근 준비로 분주할 시간이고 누군가는 아침을 먹을 시간이고 누군가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을 시간이다. 그런 시간에 나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였다는 글을 읽었다. 모든 작가가 동일하다는 글도 읽었다. 용기가 생겼다. 작가들도 했으니 나도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써보기로 했다. 써보면 알게 될 테니까.


첫 번째 주제는 자기소개다. 새 하얀 모니터에 새 하얀 페이지를 마주하고 그냥 떠오르는 대로 쓰기 시작한다. 떠오르는 데로. 이게 포인트다. 일단 쏟아내는 것. 시간은 15분. 15분만 써보기로 한다. 15분 동안 글과 놀아보는 것이 핵심이다. 생각이 어떤 식으로 연상이 되는지 다 써보면 알게 될 것이다.





9월 6일 오전 7시 30분부터 오전 8시까지 떠오르는 대로 무작정 쓴 글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 아싸~킹콩 샤워, 아싸~캡틴 큐, 아싸~뽕따, 아싸~이십오도. 어릴 적 하던 게임이 생각난다. 자기소개도 게임으로 할 수 있었던 남들 앞에서 쪽팔림이 없었던 그 시절이 참 그립다. 나이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자기소개는 더 이상 게임으로 할 수 없게 됐다. 대신 명함이라는 것을 주고받게 됐다.

당당히 명함을 꺼내 주던 20-30대를 통과했고 30대 중반에 회사를 퇴사하며 내놓을 만한, 선뜻 건넬만한 명함이 없어졌다. 뭔가 그럴싸한 명함이 필요해서 직접 디자인을 해서 되도록이면 있어 보이려고 포장을 했다. 프리랜서의 명함은 사회생활에선 인정받기 어려웠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셨다. 그렇게 30대 중반이 지나고 40대 다시 회사 생활을 시작했고 프리랜서 때보단 근사한 명함이 다시 생겼다. 다시 과감히 명함을 꺼내서 전달하는 게 가능해졌다. 하지만 4년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프리랜서의 길로 들어섰다.

회사에서는 하지 말라는 것이 너무나 많다. 해야만 지켜야만 하는 것들도 참 많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나를 온전히 다 드러내면 하수로 취급받는다. 하숙하니까 어떤 일화가 생각난다. 서울시와 일을 할 때의 일이다. 명함을 주고받은 뒤 팀장님이 그러셨다. 저에게는 편하게 언제든지 연락 주시고요 그렇게 해주시면 됩니다. 미완성되더라도 공유 부탁드릴게요. 훗날 깨달았다. 말 그대로 받아들였던 나는 팀장이 뒤통수를 쳤다는 걸 건너 건너 듣게 됐다. 일의 세계에선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는 걸, 뼈아픈 경험으로 알게 됐다. 물론 이런 상황에 놓였으니 일이 잘 될 리가 없다. 첫 단추부터 잘 못 채웠으니 말이다.

다시 화두로 돌아와서, 미친 글쓰기 두 번째 화두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를 시작했는데 정말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미친 글쓰기. 빠져든다. 재밌다. 써보니까 알겠다. 난 뭐든 잘 빠져든다. 빠져들어서 혼자 미친 척 좋아하고 미친 척 열심히 한다. 그러다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간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흡수가 상당히 빠른 편이다. 시작도 잘하고 흡수도 잘하니 남들보다 빨리 어느 정도 경지에 다다른다. 잘하진 못하지만 웬만큼은 하는 편. 이것도 나의 재능의 일부다.

얼마 전 브랜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단순 호기심에서 시작한 상담은 90분에 10만 원이었다. 처음에는 비용이 부담스러웠지만 경험한다 생각하고 비용을 지불했다. 집에서 사당까지 1시간 만에 도착해서 상담을 받았다. 결과는 대만족.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막 떠들었을 뿐인데, 웬걸. 상담자분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셨다. 입에서는 와하고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신기했다. 매직펜과 흰 종이와 포스트잇의 마법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나도 이런 능력 갖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포스트잇을 사려다가 말았다. 괜히 시작했다가 또 빠져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서서일까 아니면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일 까는 잘 모르겠다.

44년 살았고 많은 것에서 독립했다. 집에서 독립, 직장에서 독립, 친구들과 독립. 금연 독립도 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 명함이 있지만 사람들에게 잘 건네지 않는다. 명함은 진짜 내가 아니니까. 있는 그대로 순수한 내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순수한 내 모습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접속하면 드러난다. 수다쟁이 오류의 모습. 특히나 완전한 내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은 알코올이 내 몸을 적신 순간이다. 스펀지처럼 알코올이 내 몸에 흡수되면 세상이 온통 아름답게 변하고 사람들의 말은 모두 노래처럼 들린다. 신의 물방울. 나는 알코올을 그렇게 부른다. 와인을 그렇게 불러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꼭 와인에게만 붙이긴 너무 아깝단 생각이 든다. 신들이 마시던 음료, 알코올. 알코올을 정말 스릉 한다.

알코올이 몸을 적시면 노래가 부르고 싶다. 노래를 안 부른 지 꽤나 지났다. 한 10개월 정도 된 것 같다. 10개월 전에 노래방에 가서 깜짝 놀랐다. 노래도 안 부르니, 실력이 줄어든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고음도 잘 올라가질 않았다. 알코올이 부족해서 그런가 알코올을 더 몸에 들이부었지만 그날은 노래가 잘 되질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뭐든 안 하면 실력이 준다는 걸. 역시나 매일이 답인가 싶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15분 동안 미친 척 글쓰기가 바로 그것이다. 15분 동안 글쓰기에만 집중해서 쓰기. 시계를 보니 뭐지? 벌써 아니다. 35분부터 쓰기 시작했구나. 벌써 17분째 글로 수다를 떠는 중이다. 신기하다. 글이 그냥 막 써진다는 게. 새로운 경험이다. 이게 아티스트 웨이에 나온 모닝 페이지의 위력인가 싶다. 내 안에 글을 끄집어내는 일. 나를 쓰는 일. 써보면서 깨닫는 일.

글은 쓰는 것만으로 천국이라는 그 말. 이제 정말 알 것 같다. 흰 페이지와 수다를 떠는 경험. 그것도 아침에. 아침에 하니까 더 잘 된다. 역시나 아침이다. 아침이 주는 선물. 잘할 것 같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빠져들 것 같다. 재밌다. 아침부터 신기한 경험을 했다. 자랑해야지.

일단 쓴다. 쓰는 것 자체가 중요하니까. 퇴고는 나중이다. 집중하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위에. 그 자체가 중요하니까. 이따 저녁에 이 글을 보면 엄청 웃길 것 같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계속 빠졌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가를 계속 반복하는 것도 재밌다. 놀이처럼 재밌게. 정말 그렇다. 놀이처럼 재밌어야 뭐든 오래 하게 된다.

미친 척 글쓰기 첫날 경험이다. 오늘 글쓰기 끝. 15분 썼는데, 아니 정확히는 27분 썼구나. 밥 먹은 지 20분 지났는데 허기가 느껴진다. 뭐라도 챙겨 먹어야겠다.

자기소개를 해야는데 자기 다운 소개를 못한 게 참 아쉽지만, 이것도 내 모습이니, 이 글도 내 모습이니 자기소개 글이 맞나 싶다. 아니 맞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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