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의 매력 속으로
2019년 12월 22일을 시작으로 일주일에 4번씩 연습이 시작됐다. 짧게는 두 시간, 길게는 6시간. 운동과는 거리가 먼 나였기에 연습이 끝날 때마다 몸이 비명을 질러댔다. 허리, 무릎, 발목이 차례로, 때론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공연팀 사람들 대부분 그랬다.
급기야 탈이 났다. 무릎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집 근처 한방 병원에 갔더니 한의사 선생님께서 '관절염'이라고 하셨다. 침치료와 물리치료를 받았다. 당분간 무리하지 말고 가만히 쉬라는 처방도 함께. 그리고 난 한의사 선생님의 말과는 정확히 반대로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 문을 여니 향수 냄새 대신 파스 냄새가 나를 맞았다.
공연팀 멤버 중에 한 분이 물리치료사여서 매번 연습 때마다 공연팀 멤버들에게 테이핑을 선물해 주셨다. 운동선수들이 하는 테이핑을 직접 받아보니, 하고 안하고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테이핑을 하는 것만으로 통증이 사라졌다. 신기했다. 의료의 힘이란 역시 대단했다.
연습은 계속 됐지만 누구 하나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반복되는 연습에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기는 사라졌지만 묵묵히 연습을 이어나갔다.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일까? 입으로는 '아이고' 소리를 내면서 연습에 나오면 불평 없이 임하는 아이러니를 나도, 그들도 계속 수행했다.
1주일, 2주일 시간이 지나면서 거울에 비친 춤선이 점차 예뻐짐을 느꼈다. 딱딱한 동작이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습실 전신 거울을 통해 변화가 눈에 보였다. 무엇보다 음악과 함께 춤을 추는 시간은 재밌었다.
놀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몰입 이론의 창시자이며 집중력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Mihaly Csikszentmihalyi 교수는 놀이를 수동적 놀이와 능동적 놀이로 나눴다. 텔레비전, 게임, 스포츠 관람 등 집중력을 요하지 않거나 스킬이 필요 없는 놀이가 수동적 놀이다. 반면, 독서, 스포츠, 보드게임(체스나 바둑), 음악연주 등 집중력을 요하고 목표설정이 필요한 놀이는 능동적 놀이다.
능동적 놀이를 즐기는 사람은 몰입 상태에 빠지기 쉽고, 수동적 놀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몰입 상태에 빠지기 힘들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스킬이 필요한 능동적 몰입 체험은 인간을 성장시키지만, 수동적 놀이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능동적 놀이는 집중력을 높이는 트레이닝이기 때문에 자기 성장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수동적 놀이는 얻는 것 없이 시간만 보내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힌트를 주는 대목이다. 다만 같은 놀이라도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동적이 될 수도, 능동적이 될 수도 있다. 영화를 보고 ‘재미있네’로 끝나면 수동적 놀이지만, 뭔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집중하고 이후 아웃풋까지 하면 능동적 놀이가 된다.
예를 들어, 여러 가지 술을 마시고 취해서 ‘오늘 정말 즐거웠어’로 끝나면 수동적 놀이일 뿐이다. 하지만 향, 맛 등에 집중해서 테이스팅 하고 그 결과를 노트에 기록하면 능동적 놀이가 된다. 즉, 집중력을 높여주고, 목표가 있으며, 스킬이 향상된다면 능동적 놀이다. 같은 놀이라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내 능력을 향상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놀 때도 목표를 세워서 능동적으로 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말하는 능동적 놀이가 바차타였다. 얼음왕자인 내가 웨이브라는 낯선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적극적 놀이였고, 2시간이 순간 삭제되는 몰입형 놀이였으며, 연습에 나가는 건 싫지만 연습에 나가면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나를 발견한 시간을 경험했으니까. 돈을 받지 않지만 나의 열과 성을 다하는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공연팀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이런 경험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점차 난 헤어 나올 수 없는 바차타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