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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May 08. 2024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괜찮으세요?

지금 나의 가장 친한 친구도 한 때 낯선 사람이었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괜찮으세요?"


부모님이 거제로 내려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던진 질문 중 하나였다. 질문을 하고 보니 질문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지금 나의 가장 친한 친구도 한 때 낯선 사람이었단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3개월 뒤, 두 번째 찾은 부모님 집에서 난 또 물었다. 3개월 동안 친구들은 많이 사귀셨는지. 그랬더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엄마는 벌써 노래 교실의 유명 인사가 되었고 아빠 또한 친구들을 10명도 넘게 사귀셨단다. 시작은 부동산 중개인의 소개부터였다.


집을 중개해 준 부동산에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비슷한 또래의 4 커플을 소개해 주셨다. 은퇴 후 제주도에서 살아보고, 부산에서도 살다 거제로 오셨다는 2살 많은 노부부, 강원도에서 살아보고, 서울에서 살아봤다는 60대 부부, 부산에서 살다 좀 더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어 내려왔다는 프랑스인 부부, 미국에서 초밥 장사를 하다가 은퇴하고 내려온 부부였다. 2살 많은 노부부를 제외하곤 모두 아빠보다 나이가 어린 커플들이었다.


소개받은 그날, 그러니까 이사하고 1주일도 채 되지 않은 주말 저녁, 아빠가 4 커플을 초대해 먼저 식사를 대접했다. 고깃집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식사 대접을 한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4 커플이 돌아가면서 매주마다 식사 파티가 이어졌다. 미국에서 초밥집을 하다가 은퇴 후 거제로 오셨다는 부부는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손수 초밥을 대접했고, 프랑스 부부도 집으로 초대해 프랑스 가정식을 제공했다. 나머지 두 부부는 먼저 경험한 거제도의 숨은 맛집들을 소개해주었다고 한다.


4 커플 중 유독 마음이 잘 통하는, 이야기가 잘 통하는 어떤 이들은 <노래 교실(엄마가 참석하는 수업)>에 나오지 않거나 <색소폰 동호회(아빠가 참석하는 수업)>에 부모님이 안 나오시면 전화를 걸어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을 담아 전화를 건네기도 했다.


낯선 사람과 교류할 때 사람은 더 행복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해진다. 남을 더 잘 믿을 수 있고, 낙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의 저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조 코웨인의 말이다. 지난 15년 동안 심리학 연구 결과도 동일했다. 하버드대가 80년 넘게 진행한 행복 연구에서도 결과는 동일하게 나왔다.


사람의 행복과 안녕을 예측하는 최고 변수는 사회관계의 질이다. 사회관계가 좋은 사람들은 마음과 몸이 더 건강하다고 말이다. 수년 동안 이뤄진 방대한 연구들에 따르면, 사회관계가 좋은 사람들은 정신 질환부터 심혈관 질환까지, 모든 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낮았다. 친밀한 관계만 유지하는 사람보다는 가끔 낯선 사람들과의 교류를 잘하는 사람이 더 균형 잡힌 사회관계를 보인다는 이야기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불안하고 두렵다.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할지 모른다는 걱정에서다. 하지만 사람들은 걱정과는 반대로 의외로 대화가 잘 통한다. 여행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순식간에 친해지는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낯선 이를 환대하는 일은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미지의 것을 맞이하는 일이다. 낯선 이는 우리가 예전에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갖고 있다. 그 이야기는 우리의 시각을 바꾸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보도록 해준다.


그러니 아는 사람 없는 데 괜찮냐는 나의 질문 자체는 오류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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