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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Apr 24. 2024

갑자기 거제

2022년 12월 부모님이 서울을 떠나셨다.

"거제로 내려가는 기분이 어때요?"


2022년 12월, 거제로 이사하는 날, 20년 살던 정든 서울을 떠나는 날, 아파트 입구 엘리베이터에서 엄마에게 물었다. 질문을 들은 엄마는 대답 대신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맺혔다. 정든 서울, 정든 이웃을 뒤로하고 내려가려니 얼마나 아쉬울까 엘리베이터가 21층에 도착할 때까지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계셨다.


떠나기 한 달 전, 엄마는 주변에 아쉬움과 감사 인사를 전하느라 매일 같이 동분서주했다. 19층 아줌마, 7층 아줌마, 옆 동 아줌마들끼리 일주일에 한 번씩 송별회도 하셨단다. 떠나는 엄마를 두고, 이제 맛있는 김치는 못 얻어먹겠네, 잡채는 또 어떻고, 추어탕도 말해 뭐해라며 아줌마들은 엄마의 맛난 음식을 더 이상 맛볼 수 없다며 아쉬움을 전했다고 한다.


재작년 은퇴한 아빠는 1년 전부터 서울 떠나기로 결심을 했었다. 서울로 오기 전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인 경남 합천에 내려가 일주일간 지내며 근처 집을 보러 다니시기도 했고, 유튜브로 각 지역을 검색하면서 자연과 어우러진 조용한 곳을 눈으로 훑고 계셨다. 그러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발견한 곳이 바로 거제도였다. 정확히는 지세포항 인근.


어느 날 두 분이서 부산을 거쳐 거제까지 자동차로 여행을 떠나셨다. 다짜고짜 내려가자고 하면 안 갈 것 같아서 핑계 삼아 꺼내든 카드가 바로 부산 여행이었다. 부산 여행의 마지막 날 때쯤 아빠는 거제 지세포항으로 차를 몰았고 해저 터널을 지나 바다가 두 팔 벌려 맞이하는 곳을 엄마께 눈으로 직접 보여드렸다. 그리고 도착한 지세포항. 마음이 뻥 뚫리는 바다가 있고 바로 뒤편에 큼직한 산이 있는 그곳은 한마디로 지상낙원처럼 두 분께 다가왔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아빠는 인근 부동산에 아파트가 있냐며 물었고 마침 딱 원하던 뷰를 가지고 있던 아파트가 있어 선금 계약까지 하고 돌아왔던 것이다.


그러다 두 달 전 화곡동 아파트를 사겠다는 어느 노부부가 나타나 거제로의 이사는 급물살을 탔다. 일요일 아침으로 기억한다. 아침 식사를 하는 중에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왔고 전화를 받은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말만 잘하면 공짜로 줄게."


집을 사겠다는 노부부가 집값을 조금만 낮춰줄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공짜로 주겠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으니 덩달아 기분도 좋아졌을 것이다. 결국 그 노부부는 20년간 부모님이 살던 아파트를 계약했다.


두 달 동안 매일이 짐정리였다. 거제로 이사하기 위해 그간 쌓아두고 쓰지 않았던 짐들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버리기 시작했다. 버려도 버려도 끊임없이 나오는 버릴 것들. 어쩌면 그 많은 물건들을 버리면서 서울에서의 추억도 하나 둘 정리하고 계셨던 건 아닐까.


부모님이 거제로 이사한 뒤 3개월 후, 외딴곳에서 부모님은 잘 지내고 계실까 하는 걱정을 앞서 두 번째로 거제를 찾았다. 하늘 길로 1시간, 다시 육지 길로 1시간 10분이 걸려 도착한 부모님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부모님 봄햇살처럼 밝은 표정으로 맞이해 주는 것이 아닌가.


3개월이란 짧은 시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갑자기 거제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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