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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May 01. 2024

섣부른 판단 아닌가요?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만족하며 지낼 수 있으면 그뿐이다.

"너무 섣부른 판단 아닌가요?"


처음 부모님 입에서 거제도로 내려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난 이렇게 물었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곳이며, 거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낯선 곳에 간다니 걱정을 담아 물은 것이다.  


그런데 아빠는 이렇게 답하셨다.


"40년 전, 서울에 처음 왔을 때도 그랬다. 서울도 거제처럼 아는 사람 하나 없었고,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지만 그냥 올라왔다. 그리고 지금 봐라. 이렇게 문제없이 이곳에서 잘 살았다. 거제도도 마찬가지다."


듣고 보니 그랬다. 부모님이 40년 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을 때도, 그리고 다시 서울에서 다시 낯선 거제로 내려가는 것도. 그러고 보니 지금은 익숙해진 서울도 처음엔 낯선 곳이었다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영원히 정착할 것만 같았던 서울도 잠시 머무는 곳이었음을. 우리 모두는 이 세계의 방랑자임을 말이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오히려 섣부른 판단을 한쪽은 바로 나였다. 부모님은 살아온 세월을 통해, 지난날의 경험을 통해 거제도로 내려가는 것을 결정하셨다. 자신의 판단력을 믿으셨고 한번 내린 결정을 번복하지 않으셨다. 부모님 묵묵히 자신이 정한 길을 가셨다. 나의 섣부른 판단의 말이, 부모님의 미래를 가로막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설령 그것이 부모님이라 해도 그 길에 이르는 과정을 섣부른 충고나 설익은 지혜로 가로막지 말아야 함을 깨달았다. 경험하지 않고 얻은 해답은 펼쳐지지 않은 날개와 같으니. 삶의 문제는 삶으로 풀어야 하니까.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건 어떤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서 자기가 만족하고 지낼 수 있으면 그뿐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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