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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래가 아니고 빨래였다

그때 분명히 알았다면 시작도 안 했을 텐데

by 오류 정석헌

32년 전 겨울이었고 방학이었다. 그리고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지금은 목사가 된 의석을 만나러 밤 9시 한광 고등학교 운동장을 찾았다. 운동장 입구에서 도착했는데 의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농구 골대 주변으로 가로등이 켜져 있었지만 어디에도 의석은 보이지 않았다.


실눈을 가늘게 뜨고 운동장 주변을 스캔하던 중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희미하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니 의석이 모습이 보였다. 의석이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오른손이 얼굴로 향하고 잠시 뒤에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동작이 반복해서 보였다.


담배였다. 의석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하얀 것. 의석 옆에 다가가자 의석은 하늘로 멋들어지게 연기를 내뿜었다. ‘후~~~~’ 굴뚝에서 피는 건 봤어도 이렇게 가까이서 사람이 피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연기와 냄새 때문에 몽롱해진 탓인지, 그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한대 빨래?”

“어?, 어…, 어…….”


필래가 아니랴 빨래였다. 얼떨결에 받아 들긴 했는데 어찌할 줄 모르는 내게, 의석은 라이터를 들이밀었다. 이윽고 라이터에 불이 켜졌다. 주변이 환해지면서 의석의 얼굴도 환해졌다.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에 얼굴을 들이댔다. 어디서 본 게 있어선지 행동이 약간 엉거주춤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려고 애썼다.

'쫙~' 소리가 났다. 담배가 타들어가며 나는 소리였다. 불이 서서히 내게로 옮겨 붙었다. 입으로 빨았다. 뻐끔뻐끔. 생각 없이 먹이를 먹는 금붕어 마냥 생각 없이 연기를 빨아봤다. 그땐 몰랐다. 그게 지옥의 문인지. 훗날 나를 옥죄는 감옥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2021년 8월 14일 금요일 오전 7시, 담배를 두 대 피고 집으로 올라와 정갈하게 씻고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점점 바람이 선선해짐에 이제 여름도 다 끝났구나 생각하며 걷는데 가슴이 갑갑하고 머리는 띵했다. 좀 있으면 괜찮겠지 했는데 아침밥을 다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나아지질 않았다. 그대로 병원으로 직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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