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이렇게 학부모의 억지 주장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대부분 댓글에 왜 아이가 그 모양이냐, 그 지경 될 때까지 집에서 부모가 뭐 했냐는 물음이 많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 분, 아니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집 역시 마찬가지로 교육 관련 종사자가 아니면 아이들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모님은 아이가 하는 말을 100% 믿게 된다. 내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앞뒤 정황 파악할 생각도 없이 무조건 아이 편을 드는 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다. 이 과정에서 오해가 풀리고 잘 해결이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안 되는 경우에 진상 학부모가 되기도 하고 뉴스에 나오는 갑질 학부모가 되기도 한다.
결혼 전, 당시의 나 역시 이런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교수부장님 바꿔주세요!"
학부모의 목소리 톤과 어투에서 무언가 불만이 있다고 직감적으로 느낀 선생님이 나를 찾았다.
"교수부장님, 안나 어머님 전화인데 받아보세요. 그런데 어머님이 화가 잔뜩 나셨어요"
무엇 때문에 화가 나셨나 의아한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안녕..."
인사를 할 타이밍도 안 주시고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따발총처럼 막 쏘아대셨다.
"아니 왜 선생님 생일을 미리 알려주시지 않아서 우리 아이만 쿠키를 못 받게 하셨나요? 안나(가명)가 그러는데 오늘 OO선생님 생일이라 다들 모여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선물을 줬는데 자기만 선생님 선물을 준비 안 해와서 쿠키를 혼자 못 받았다고 하네요, 유치원에서 애를 혼자 따돌림시키면 안 되죠. 우리 애가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집에 와서 울면서 저에게 하소연을 하겠어요? 선생님 곧 결혼하신다던데 아이 키우면서 이런 일 생기면 얼마나 가슴 아픈지 선생님도 아실 거예요. 가뜩이나 애가 똘똘하지 못해서 속상한데 동생반도 모여있는 자리에서 왜 우리 애만 쿠키를 안 줘서 망신을 시키는 건가요? 아이가 얼마나 무안했겠어요?"
컴플레인 전화는 이미 어머님들이 화가 나 있는 상황에서 학원에 전화를 하기 때문에 같이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면 안 된다. 속사포처럼 쏘아붙이는데 중간에 말을 끊으면 말 끊는다고 더 기분 나빠하시기 때문에 그냥 수화기를 귀에서 살짝 떨어뜨리고 듣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소리 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내 옆자리인 원장님 자리까지 다 들리니까 원장님도 무슨 상황인지 옆에서 지켜보고 계셨다.
어머님의 말이 다 끝난 후 말할 타이밍이 나에게 넘어왔을 때 내가 말씀드렸다.
"어머님 많이 흥분하셨으니 일단 조금 진정하세요. 오늘 선생님 생일이라 저희가 점심급식 후 아이들 자유시간에 함께 모여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준 후 다 함께 생일 케이크를 나눠 먹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오후 수업 끝난 후 쉬는 시간에 선생님이 생일이라고 본국에서 가족들이 간식거리를 박스로 보내줬는데 너무 많다고 원으로 가져오셨어요. 그 간식을 모든 반이 다 함께 쉬는 시간에 모여서 나눠먹은 게 전부입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원 방침상 선생님 생일이라고 선물을 준비해 오라고 미리 공지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아이도 선생님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어요."
"그럼 저희 아이가 이런 일을 거짓말로 꾸며냈다는 말인가요?"
어머님이 계속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자 통화를 듣고 있던 원장님께서 전화를 넘겨 달라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어머님 원장님께서 통화 원하시는데 연결해 드릴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어머님, 원장입니다. 일단 어떤 상황인지 알겠으니 진정부터 하세요. 저도 그 시간에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교수부장님 말씀대로 선생님이 가져오신 쿠키와 간식들을 모든 아이들이 함께 나눠먹었고, 선물을 준비해오지 않았다고 안나만 쿠키를 안주는 일은 없었어요. 애초에 다른 아이들도 선생님 생일이 오늘인지 몰랐고 아무도 선생님 선물을 준비해 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원에서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선생님 생일이니까 선물을 준비해 오라고 하는 원은 없을 거예요"
"그... 그런데 왜 안나는 그런 말을 하나요?"
"저희도 그 부분이 의아한데 일단 아이와 함께 더 깊은 대화를 나눠보세요. 집에서 어떤 상황에 그런 말이 나왔는지 잘 모르겠으나, 저라도 아이로부터 그런 말을 듣게 되면 화가 날 테니 어머님이 어떤 마음으로 전화하셨을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알겠어요"
나와 원장님께 자초지종을 들은 어머님은 민망하신지 전화를 바로 끊으셨다.
원래 아이들은 거짓말을 자주 한다. 지금도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선생님과 엄마들 눈을 피해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나는 아이들이 하는 모든 말들을 100% 믿지 않고 걸러서 듣고 어머님과 통화를 하면서 확인을 재차 하고는 한다.
그런데 아이가 첫째인 데다가 영유아 시기에는 엄마들이 아이를 100% 신뢰한다. 내 아이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믿는 것이다. 조금 크고 학령기로 넘어가서 몇 번 아이에게 당해봐야 엄마들도 경험치가 쌓이는데 유치부 엄마들은 그런 경험치가 전~혀 쌓여있지 않은 상태라는 건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이런 경험치는 유치부부터 고등부까지 다양한 아이들을 경험해 봐야 쌓이는 건데 나는 아이들을 많이 다뤄봤지만 대부분의 유치부 엄마들은 아직 그렇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내 아이를 믿을 수밖에 없다.
"안나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요? 선생님하고 통화해 보면 금방 들통이 날 텐데 말이죠."
"원래 애들은 자기편에서 유리한 거짓말 자주 해요. 안나 엄마도 집에서 아이와 다시 이야기해 보고 느끼겠죠. 안나가 유치원에서는 친구들에게 치이고 집에서는 동생에게 치이니까 엄마한테 관심받고 싶어서 그런 거짓말을 한 것 같기도 하네요"
아이가 또래에 비해 많이 뒤처지는 편이라 그 엄마에게도 첫째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런데 유치원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니 앞뒤 재볼 상황도 없이 전화해서 쏘아붙였던 건데 결국 나중에는 상황을 파악하신 후 엄마도 사과를 하셨다.
글에서는 간략하게 그 당시 있었던 일만 언급했으나 이런 일이 발행해서 해결되기까지 3일이 걸렸다. 아이 의견도 들어보고 어머님과 지속적으로 통화하고 사과를 하신 후 일이 마무리되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나도 학원업무에 수업에 사태해결까지 일이 힘들었지만 나뿐만 아니라 당시 선생님들모두 힘든 시간이었다. 특히 간식거리를 가져오신 선생님이 내가 왜 그걸 가져와서 괜한 분란을 일으켰나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어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원래 당사자들이 가장 힘든 법이다. 나는 중간관리자로서 선생님 탓이 아니라고 선생님도 위로해줘야 했고, 아이도 상처 입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고 학부모와도 지속적으로 통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아플수록 성숙해진다고 하듯이 이렇게 몇 년간 두드려 맞다 보면(?) 면역력이 생겨서 학부모의 컴플레인에도 능숙하게 대처하는 게 가능해진다. 원래 중간관리자 역할이 위, 아래 다 챙겨야 하기 때문에 힘든 법이다.
여전히 불신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학교, 학원, 유치원, 어린이집 모두 힘든 일을 겪고 있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선생님들도 그들의 부모님들에게는 소중한 자식인데, 일단 흥분한 엄마들은 내 생각만 한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서로를 존중해 줌으로써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행동이 절실하게 필요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