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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트쌤 Mar 17. 2023

그거 부원장님 거 아닌데요

선생님들 선물 좀 내버려 두세요

학원에서 근무하다 보면 학부모로부터 선물을 받을 때가 가끔씩 있다. 그런데 그 당시 근무했던 학원은 역대 최악의 오너였고, 앞으로 인생 살면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이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느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때 내가 근무했던 학원은 200명이 넘는 대형 어학원이었고 교수부장인 나는 출근해서 퇴근시간 직전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아침에는 영어 유치부 등교하는 시간에  반에 모든 아이들이 무단결석 없이 등원을 했는지 확인해야 했고 5세 반 아이들 캐어까지 해야 했다. 6,7세 반은 한국인 담임선생님이 따로 있었지만 5세 반은 담임이 없었기에 내가 오전 내내 5세 반 아이들과 붙어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6,7세 반의 담임 선생님들 중 영어를 할 줄 아는 선생님은 단 한 명도 없었기에 수업 중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들어가서 원어민 선생님과 소통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유치부가 수업하는 시간에는 7개의 반이 돌아가면서 나를 찾는 바람에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당연하게도 교무실의 내 자리는 오전 내내 비어있었다.

유치부 아이들이 하교한 후 교무실에 올라가면 내 자리에 해야 할 일들이 잔뜩 쌓여있었고 그나마 초등부는 손이 덜 가서 오후에 아이들이 수업 시작하면 나를 찾는 인터폰이 오전 시간보다는 덜 울리는 편이었다. 게다가 오후에 나도 초등부 아이들 수업이 반마다 돌아가며 매일 한 시간씩 있어서 강의실에 들어와서 직접 나를 찾는 날이 더 많았다.


이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다가 학부모가 오후에 선생님들 드시라고 커피나 간식들을 사서 올려 보내면 부원장은 꼭 자기가 그걸 받아서 교무실에 가져다 놓지 않고 자기 차에 넣어놨다가 퇴근하면서 집으로 가져갔다.

당시 학원은 남편은 원장 와이프는 부원장인 부부 경영 학원이었다. 집에 애들이 셋이나 있으니 간식이나 다른 먹거리들을 엄청 탐했고 학부모들이 선생님들을 위한 케이크나 간식을 사서 올려 보내는 날에 운 나쁘부원장의 눈에 먼저 발견되면 곧장 자기 차로 가져가 버렸다.

선생님들이 어쩜 저렇게 못됐냐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건 당연했다. 부부가 둘이 똑같았던 게 부원장이 그렇게 욕심을 부리면 원장이 그거 직원들 좀 먹게 두라고 한마디 할 법도 한데 원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쿵짝이 잘 맞으니까 부부가 한 공간에서 같이 사업을 했던 것 같다.


유치부 아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자기 반에서 생일인 친구들이 있는 달에는 생일파티가 있었는데 생일파티를 하는 날 부원장은 눈에 불을 켜고 감시를 했다. 엄마들이 생일파티를 하게 되면 피자가게에서 피자를 주문해서 생일파티 시간에 맞춰 배달이 도착했다. 지금은 그런 서비스가 없어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피자박스에는 쿠폰이 붙어있었다. 그 쿠폰을 열 장 모으면 피자를 주문할 수 있었는데, 피자박스에 있는 쿠폰을 선생님들이 가져가서 모을까 봐 자기가 가져가려고 생일파티 하는 날은 꼭 끝나갈 때쯤 교실 앞에서 지키고 있다가 쿠폰을 가져갔다.

우리 반에서 나온 쿠폰을 왜 자기 집으로 가져가냐면서 한국인 담임 선생님들은 부원장을 거지 같다며 엄청 비아냥 거렸던 게 기억난다.

내가 이 학원에 근무하기 전에는 교수부장이 따로 없었기에 엄마들이 선생님들 선물을 부원장에게 전달했다. 자기네 반 원어민 선생님께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 것을 자기가 중간에서 가로채서 가져가 버렸다.


그런데 내가 입사한 후 상황이 바뀌었다.

내가 교무실과 강의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관리를 하니까 상대적으로 부원장의 일이 줄어들었당연히 엄마들은 나를 통해 선생님들과 소통했다. 나는 선생님들 선물을 가로채는 거지 같은 짓거리는 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원어민 선생님들과 각 반의 한국인 담임 선생님들은 나를 무척 좋아했다.

간식을 받는 날에는 무조건 탕비실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모든 직원들이 간식을 공유했고 학부모들이 주는 선물은 그대로 각 반의 원어민 선생님에게 전달되었으니 당시 1년 이상 근무하면서 부원장이 자기들의 선물을 가로채가는 걸 눈으로 직접 목격한 원어민 강사들은 케이트가 와서 학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무척 좋아했다.

이들도 뒷담화에 목이 말라있었는지 원장과 부원장이 자리를 비우면 나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해줬고 그래서 다 알고 있었지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번은 무더운 여름에 아이들과 함께 먹으라고 6세 반의 어떤 학부모가 수박을 한통 사들고 오셨는데 그 수박을 그대로 부원장이 집으로 가져가서 그날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수박을 한 입도 못 먹어봤다는 원어민 선생님의 고자질에 기가 막혔다. 일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몇몇 학부모들은 부원장이 선생님들 선물을 가져가는 걸 알고 있었다. 이건 학부모가 나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셨다.

"부원장님한테 드리면 전달이 안되더라고요. 제가 아이에게 물어봐서 확인했거든요. 그래서 교수부장님께 따로 부탁드리는 거니까 부원장님 한테는 아무 말 마세요."

나에게 이렇게 직접 이야기를 하신 후 원어민 선생님께 전달 좀 부탁한다면서 아는 엄마들은 꼭 나를 찾았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개망신이란 말인가!


그 당시 한국인 담임 선생님들은 영어를 못하는 선생님들만 뽑아놨기 때문에 원어민 강사들은 자기네 반 담임과 소통이 불가능했다. 무조건 원장이나 부원장을 통해야만 소통이 가능했기에 내가 입사하기 전 까지는 이들도 서로 꼭 필요한 말 아니면 말을 안 했던 것이었다.

본인에게 오는 선물이 맞는 것 같은데 한국어를 못하기에 의심만 하고 있었고, 심지어 몇몇 원어민 강사들은 생일파티에 부원장이 직접 들어와서 쿠폰을 뜯어가거나 아이들이 먹어야 할 먹거리를 애들은 어차피 먹는 양이 적어서 남으니까 이것만 주라고 해놓고 다 가져가 버린 적이 있어서 막상 생일파티에서 담임 선생님은 아무것도 못 먹고 애들만 먹인 일도 있었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 반에서 생일파티 하면 나보고 들어와서 관리 좀 해달라고 직접적으로 부탁하는 원어민들도 있었다. 선생님이 못 먹는 건 상관이 없는데 아이들이 음식을 더 달라고 하면 남은 게 없어서 애들이 더 달라고 할 때가 제일 난감했다고 하면서 애들 먹을 음식 좀 가져가지 못하도록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선생님들과 친해진 후 퇴근 후 같이 저녁 먹자고 우리끼리의 회식 아닌 회식 같은 자리를 잡았던 어느 날이었다.

"난 처음에 교무실이 너무 조용해서 숨이 막히더라고. 다른 학원에서 근무할 때는 선생님들끼리 서로 개인적인 이야기도 가끔씩 하고 아이들 교육 이야기도 자유롭게 하는 분위기에서 일했는데 여기는 교무실에서 한 마디도 안 해서 너무 부담스러웠거든"

"그게... 우리는 네가 원장이 고용한 스파이인줄 알았거든. 한국인 담임들은 우리랑 대화를 못하게 영어를 못하는 사람만 뽑아놨지 직원들 중 우리와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던 상황에서 어느 날 갑자기 네가 교수부장이라고 고용이 되어서 교무실에 앉아있는데 네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깜짝 놀랐거든.  그들에게  말을 어떻게 전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교무실에서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었겠어? 그래서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거든"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는 서로 가지고 있던 오해를 풀었고, 그 이후부터는 당연히 교무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원장과 부원장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시간에는 전처럼 각자 침묵을 지키며 자기 할 일만 했다.


친정 엄마도 사업을 하셨지만 손님들이 엄마에게 직접 주는 선물이 아니고서는 들어오는 먹거리는 항상 직원들에게 양보하셨고 엄마는 오히려 간식을 사 와서 먹어가면서 일하라고 하셨다. 지금도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그동안 일했던 그 어떤 학원도 원장이 직원들 선물이나 간식을 자기 집으로 가져가는 학원은 이곳을 빼고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계약기간이 다 끝났고 한 달 전에 미리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학원 측에 통보를 해놓은 상황이었다. 원장과 부원장이 퇴사하겠다는 내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고 나를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붙잡으려고 온갖 회유를 했지만 이미 나는 더 좋은 환경의 학원에 스카우트가 된 상황이었고 어차피 그쪽 학원에서도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나를 위해 배려해 줬던 상황이어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도 없었기에 시간 끌지 말고 후임자를 구해야지 내가 인수인계를 해주고 나갈 수 있다고 통보를 했고 결국 내 후임을 구해놓고 퇴사를 했다.

그리고 나중에서 알게 되었는데 그렇게 욕심을 부리더니 3년 후 학원의 경영난 문제로 다른 사람에게 학원을 넘기고 손을 뗐다는 소식을 사교육에 종사하는 지인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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