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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트쌤 Apr 19. 2023

새내기 어린이 기자

글쓰기 연습에 좋은 수단이 생겼습니다

매번 엄마가 쓰는 글을 읽기만 하던 아들이 요즘 꽤 진지하게 글을 쓰면서 아이도 나름대로 바쁜 어린이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후 열혈 독자 1호가 된 아들도 집에서 다양한 포맷의 글을 써보면서 자신이 쓴 문장을 조금 더 매끄럽게 고쳐본다거나 디테일을 살려가면서 글을 쓰고 있었다.

학교에서 쓰는 독서록의 기록장 만으로는 연습량이 충분하지 않기에 집에서도 시간을 내어 글을 써 보도록 연습을 시키고 있던 와중에, 우연히 지난 3월 서울시 어린이 기자를 선발한다는 공고를 봤고, 아들에게 글을 써보라고 권했다.

어른이 대신 써주면 너무 티가 나니까 마감 기간 전까지 스스로 써보라고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는데 흥미가 생겼는지 주제에 맞춰 글을 혼자 써서 제출을 했다.

600자를 어떻게 쓰냐며 고민하는 듯하더니 예상외로 써보니까 1000자가 넘어버려서 수정을 몇 번 거치더니 글을 혼자 완성해서 제출을 했다.


선발 인원을 많이 뽑기에 웬만큼 쓰면 기자로 뽑힐 수 있는 기회일 것 같아서 한번 해보라고 권했던 게 발단이 되어서 시작한 일인데 생각 외로 글을 제출해 놓고 아들이 발표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홈페이지에 공고된 날짜와 시간에 정확하게 맞춰서 합격 문자가 전송되었다. 아들은 엄마의 도움은 받지 않은 채 스스로 써서 제출한 글이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에 굉장히 뿌듯해했다.

그런데 글 쓰는 연습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권한 일이 커져버렸다. 탐방취재는 보호자가 동행해야 하므로 나 역시 아들의 조수가 되어서 데리고 다녀야 했기에 덩달아 더 바빠졌다.

탐방 취재 갔던 날 인터뷰하기 전에 카메라 앵글을 확인 중

게다가 지정주제가 공고되면 주제에 맞춰서 기사도 써야 하고 자유주제는 말 그대로 자유롭게 기사를 써야 하니 4월에 첫 기자활동을 시작한 아들은 벌써 지정주제부터 난감해했다.

"설문조사를 어떻게 해? 우리 반 애들이 이걸 제대로 해줄까?"

"해보지도 않고 벌써 걱정할 필요가 뭐 있어? 일단 설문조사지를 만들어봐. 출력은 아빠가 해 줄 거니까 만들어서 학교에 가지고 가봐. 생각보다 많이 해줄걸?"

남편에게 부탁을 해서 아들이 만든 설문조사지를 20장 복사해 아이에게 안겨줬더니 이걸 언제 다 하냐며 한숨을 쉰다.

"생각보다 많이 해줄 거야. 일단 가지고 가서 친한 친구 한 명에게 잘 설명하고 부탁해 봐"

설문조사지를 넉넉하게 복사해서 학교 갈 때 아들 가방에 넣어서 보냈고, 아침부터 이거 언제 다 받냐며 아이는 걱정만 한가득 안고 등교했다.


"엄마, 오늘 설문조사 엄청 수월하게 했어."

학교 다녀온 아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나랑 제일 친한 친구 00에게 해달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가져가서 반 애들한테 해달라고 다 전해주더라고.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뭐냐고 물어보더니 자기도 한다고 달라고 해서 금방 다 끝냈어"

"거봐. 엄마말이 맞지?"

"응. 친구들이 친절하게 해 줘서 너무 고맙더라고. 나도 다음에 누가 부탁하면 잘해줘야겠어."

아이들 특성상 한 명에게만 부탁하면 저절로 다른 아이들이 모여들 거라는 내 예상이 적중했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쉬는 시간에 금방 완성해서 다 걷어왔다고 아들은 신났다.

집으로 가져온 설문조사를 추렴해서 그래프로 결과를 만들어낸 후 기사를 마무리하는 아들의 열정에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어설픈 새내기 기자의 모습이 보여서 웃기기도 했지만, 나름 진지하게 결과물을 완성하는 걸 보니 올 한 해는 글을 좀 완성도 있게 쓸 것 같은 학부모로서의 기대감이 생겼다.

기자증과 기자수첩

평소 아들의 글이 너무 완성도가 떨어져서 글 쓰는 습관을 고쳐주려고 잔소리도 하고 많이 싸우기도 했는데, 올해는 동시도 그럴싸하게 써보고 기사를 제대로 써서 제출하려니 글쓰기 연습이 저절로 되는 것 같다.

"엄마가 댓글을 왜 확인하고 답변을 하는지 이제 알 것 같아"

본인이 쓴 기사에 누가 댓글을 달아줬다며 대댓글을 달며 아들이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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