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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Jul 13. 2023

학폭까지 안 가고 생활지도 차원으로 끝내겠습니다

  초2 키우는 엄마입니다

그제 밤에 샤워하고 나와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자기 몸을 바라보던 아이가 말했다.

"근데 김태우(가명)가 내 고추 만졌어."

"응? 김태우가 니 거기를 만졌다고?"

"응."

"언제?"

"방과후 OO시간에. 걔가 내 등도 때리고 고추도 만졌어."

갑자기 하이톡 알림장에 선생님이 '친구 몸에 손대지 않기'라고 쓴 게 떠올랐다. 나는 무릎을 꿇어 몸을 낮추고 아이와 눈을 마주친 상태로 침착하게 물었다.

"바지 안에 손을 넣어서 만졌어, 아니면 바지 위로 만졌어?"

"당연히 바지 위로 만졌지. 말이 돼?"

"그래서 넌 어떻게 했어?"

"하지말라고 소리 질렀어."


김태우라는 아이는 같은 반이고 그 전에도 내 아이를 때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선생님한테 김태우가 내 아이를 때렸다고 연락하지는 않았다. 남편 말마따나 "그러면서 크는 거지. 그렇게 부딪히면서 배우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아이가 유달리 속상해 하거나 정황을 들어봤을 때 심하다는 생각이 들면 선생님한테 메시지를 쓰다가도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그래, 어젠 내가 너무 흥분했었어.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하면서 메시지를 전송하지 않은 날도 있다.


하지만 이번 건은 단순히 때린 게 아니라 성기를 만진 일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 방과후 시간에 김태우가 저희 아이 성기를 만지는 장난을 쳤다고 합니다. 바지 위로 만졌다고 해요. 저희 아이는 하지말라고 소리질렀다고 합니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인데, 선생님께도 알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메시지 드립니다."


아침에 그 메시지를 전송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일단 선생님이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고 중재를 할지 학폭으로 갈지를 물어보셔서 전자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김태우라는 아이는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아이였다. 언뜻 보면 내 아이의 두 배 정도 된다. 학교에서 힘이 센 걸로 소문이 나있는 아이이기도 했다. 나의 아이는 김태우에게 힘으로는 대적할 생각도 못하는 것 같았다. 때리는 건 장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기를 만지는 행동은 장난으로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고, 그 아이 스스로 그런 행동이 심각한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등교하려고 가방을 메고 있는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선생님한테 그 얘기해서 오늘 선생님이 너한테 물어보실 거야. 물어보시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얘기하면 돼."

갑자기 아이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아이가 말했다.

"갑자기 김태우한테 미안한데... 걱정 돼."

"승현아(가명), 다른 사람의 중요 부위를 만지는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야. 김태우가 니가 아니라 다른 아이한테 그랬어도 선생님한테 혼나야 되는 거야. 어른 돼서 그런 행동하면 감옥 가. 더 늦기 전에 그게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김태우도 알아야 돼."

아이는 수긍한 듯 담담한 얼굴로 학교에 갔다.


오후 두 시쯤 선생님한테 다시 전화가 왔다. 김태우는 처음에는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다가 자기가 그랬다고 시인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우리 아이에게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인지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는지를 물었는데 전에도 몇 번 있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두 아이를 불러서 사과하게 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불렀을 때는 이미 김태우가 우리 아이에게 사과를 한 상태였다. 우리 아이는 그러고나서 그 일을 잊어버리고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선생님이 태우 어머니에게 내 연락처를 알려줘도 되냐고 물어보셔서, 나는 아이 엄마한테 사과를 받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연락처는 알려주셔도 상관없다고 했다. 몇 분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태우 엄마인가 싶었지만 내가 바로 수업에 들어가야 되는 상황이라 받지 못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문자가 와 있었다. 사실은 태우 어머니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예전에 어떤 아이 생일파티에 같이 초대받아 만난 적이 있었고 녹색어머니 활동할 때도 짧은 인사를 나눴었다. 문자 내용은 '정말 죄송하다, 태우가 우리 아이에게 사과하게 하겠다,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잘 가르치겠다, 정말정말 죄송하다'였다. 나도 아직 어린 아이들이고 태우가 나쁜 의도로 그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니 잘 지도해 달라고 답장을 보냈다.


하교한 아이에게 물었다.

"김태우가 진심으로 사과했어?"

"응."

"마음이 좀 풀렸어?"

"응."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이게 가장 중요했다. 아이의 마음이 풀린 것 말이다.


그 다음 날 아침엔 학생부장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학교에서는 이번 일을 꽤나 심각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학폭으로 안 가고 생활지도 차원으로 끝내는 게 맞는지 나의 의사를 재차 확인했다. 학생부장 선생님은 아이들끼리 구두로 사과하긴 했지만 태우에게 사과 편지를 쓰게 하겠다고 한다. 추후 태우와 나의 아이에게 성교육 관련 전문가 선생님 면담을 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나는 학교의 조치는 받아들이겠지만 아직 저학년이고 어쨌든 가볍게 지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담임 선생님이 상담할 때 나더러 이렇게 우아하게 얘기하는 학부모님을 만나 다행이라는 말을 하셨다. 내 목적은 김태우가 다시는 우리 아이에게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내 아이가 좋은 학교 생활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담임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주셨고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중재를 해주셨으며, 내 아이가 그 아이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았고 그래서 마음이 풀렸으므로 나는 그걸로 만족하는 것이다. 내가 고매한 성품의 소유자여서가 아니라, 상대 학부모 또한 소통이 되는 사람이었고 적극적으로 사과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아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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