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내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 – 가방 두 개, 9년

4장. 다시 시작, 대학원과 디자인의 길

by hellomonkeystar

첫 직장은 오래가지 못했다. 버티려고 애썼지만, 애쓴다고 버텨지는 건 아니었다. 일이 나랑 안 맞는 건지, 내가 사회생활을 못하는 건지, 그땐 뭐가 뭔지 잘 몰랐다. 다만 퇴근 후 집에 가면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던 날들이 많았다.

결국 그만뒀다. 퇴사라는 말에 사람들이 겁을 먹는다지만, 나는 오히려 조금 후련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었고, 자신감도 없었다.
그럴수록 마음속엔 ‘나는 뭔가 부족하다’는 감정이 커졌다.

그래서 선택한 게 대학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쩌면 도피였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나왔다는 스펙이라도 있으면, 한국에 돌아갔을 때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단순하고 막연한 기대였다.

영어는 여전히 자신 없었고, 토플 점수도 충분치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학교에서 조건부 입학을 허락했다. ESL 수업 듣고, 선수과목 몇 개 이수하면 정식 입학시켜주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그게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학비는 비쌌고, 월세는 매달 날카롭게 찾아왔다. 누가 대신 내줄 것도 없었고, 그냥 스스로 벌어야 했다.

그 시절,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대학원 수업을 듣는 삶을 살았다.
하루 3~4시간 자는 게 일상이었고, ‘삶이 나를 깎아내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생계를 위해 할 수 있었던 건 디자인이었다.
‘좋아서 했다’는 말은 못 하겠다. 솔직히 디자인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그냥 그나마 할 줄 아는 게 그거였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 그거뿐이었다.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적도 없다.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는 혼자서 유튜브 보고 따라한 수준. UX나 UI 같은 개념도 그냥 대충 눈으로 본 게 다였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했으니까, 콜드 메일을 돌렸다.
내가 살고 있던 지역의 중소기업, 로컬 브랜드, 병원, 네일숍…
디자인이 필요할 법한 곳에 짧은 자기소개와 포트폴리오 몇 장 넣어서 보냈다.

기대도 안 했는데, 답장이 왔다.
그렇게 나는 디자이너가 됐다.
누구보다도 준비되지 않은 디자이너.

비자 때문에 불법으로 현금을 받아야 했기에 연봉도 낮았고, 조건도 별로였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 무렵 연애도 했다.
그 남자는 미국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대위였다.
자기 세계가 뚜렷한 사람이었고,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 잠깐은 ‘나도 괜찮은 사람인가’ 싶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간도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그의 부모가 나에 대해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여자가 너를 통해 영주권 얻으려는 거 아니야?”

그 말이 내 마음을 찢어놓았다.
나는 진심이었고,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에 내가 쌓아온 감정, 노력, 삶까지도 모두 가짜로 몰린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로서 그런 걱정을 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때의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그렇게 연애도 끝나고, 직장은 여전히 불안정했고, 공부는 여전히 어려웠다.

디자인은 여전히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돈을 벌어야 했고, 누군가는 내 손을 필요로 했으니까 계속했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별로 대단한 목표도 없었고, 불타는 열정도 없었다.
그냥 그날을 넘기면 되는, 그런 식의 삶이었다.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다.
멈추지 않았다는 건, 그 시절의 나를 지금까지도 살게 한 유일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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