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버티는 삶, 사랑과 생존 사이
그를 처음 만난 건 교회에서였다. 따뜻하고 순한 사람이었다. 나보다 훨씬 더 착했고, 순진하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맑은 사람이었다. 내 과제가 힘들다고 하면 아무 말 없이 도와주는 사람이었고, 그런 마음에 나도 어느새 깊이 빠져들었다.
사랑은 조용히 시작되었지만, 그 끝은 조용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주말, 그의 가족을 처음 만나러 갔던 날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의 어머니는 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런 배경으론 힘들겠네’라며 비꼬듯 말했다. 내 학벌, 내 신분, 내 배경 모든게 마음에 안드신다는게 느껴졌다. 처음엔 애써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말끝마다의 뉘앙스는 결국 나를 자극했다.
지금 같았으면 그냥 웃으며 넘겼을 수도 있었을까.
하지만 그때 나는 젊었고, 상처에 예민했고, 내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맞받아쳤다.
결국 그날, 우리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끝났고, 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과의 관계도 거기서 끝나버렸다.
사랑도 끝났지만, 일상도 만만치 않았다.
유학생활은 고된 생존의 연속이었다.
한 회사는 파견근무를 시켜준다고 해놓고,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들이밀었다. 로비를 했다는 오해까지 받았다.
억울했지만, 설명할 기회도 없이 나는 그만두어야 했다.
어떤 회사는 ‘영주권을 해주겠다’는 말만 해놓고는, 끝내 해주지 않았다.
또 다른 곳은 회사 사정이 안 좋다며 내게 비자를 신청하게 한 뒤, 곧바로 해고했다.
불법 야근을 강요하고, 야근수당은 없었다.
그래서 싸웠고, 결국 소송까지 갔다.
하지만 그런 싸움은 이긴다 해도 남는 게 별로 없었다. 그냥 더 지칠 뿐이었다.
몸도 점점 무너졌다.
방광염이 신장까지 번져 신우신염이 되었고, 열이 40도까지 올랐지만 병원비가 무서워 차를 직접 몰고 집에 갔다.
다음 날은 우버를 타고 친구 집에 가서 겨우 몸을 눕혔다.
식중독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날도 있었다.
그런데 의사를 만나지 못한 채 동틀 무렵,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병원은, 나에게 너무 비쌌다.
음식은 회사에서 남은 걸 싸와 먹었다.
그렇게라도 아끼지 않으면 안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음식으로 탈이 난 적도 있었다.
올리브오일로 화장을 지우다 얼굴이 다 뒤집힌 날도 있었고,
생리대가 없어 회사 화장실에서 휴지를 돌돌 말아 써야 했던 날도 있었다.
학비와 월세가 밀려서 친척 오빠 집으로 다시 얹혀살기도 했고,
운전도 못하는데 한 시간 반씩 걸리는 학교를 매일같이 오갔다.
자동차 범퍼가 덜렁거리는데도 고칠 돈이 없어 그대로 달고 회사를 다녔고,
회사에선 엉뚱한 직원이 내게 덤터기를 씌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화가 나서 “이런 회사 더는 못 다닌다”고 말했더니, 그날 바로 해고됐다.
통장엔 잔고가 거의 없었다.
그래도, 버텼다.
'졸업만 하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 믿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견뎠다.
사랑도 일도 건강도, 다 흔들렸던 시간.
그럼에도 나는 계속 살아냈다.
그 누구의 방식도 아닌, 오직 내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