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허용된 1년, 사랑과 오해 사이
학교를 마친 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1년 동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제야 조금 숨통이 트이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때 다니던 회사는 젊은 여성들이 많은 디자이너 중심의 회사였다. 겉으론 밝고 세련되어 보였지만, 안으로는 조용한 폭력이 돌고 있었다.
디자인 팀의 리더, 헤더는 유독 특정 사람을 미워했다. 매번 타겟을 정해 누군가를 따돌렸고, 그게 일종의 문화처럼 굳어져 있었다.
어느 날, 한 동료가 퇴사했다. 그리고 다음 차례는 나였다.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나를 깎아내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했고, 나는 점점 투명인간이 되어갔다. 그래도 버텼다.
그 회사는 퇴근이 빨랐고, 그 덕분에 나는 저녁마다 수업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는 문득,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그 즈음, 1년짜리 합법적인 체류 기간이 시작되었고, 나는 한 소프트웨어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 회사의 사장은 나를 무척 잘 대해주었다.
내가 싫어하면서도 버텨온 이 디자인이라는 일을 두고, 그는 "이건 타고난 재능"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쳐 만든 소프트웨어를 함께 디자인하자며 나를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에 투입시켰고, 우리는 함께 한 작품을 만들어갔다.
그 시간은 내게 특별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느낌, 그리고 그를 통해 느낀 따뜻함.
나는 그 마음을 ‘사랑’이라고 착각했다.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믿었고, 조용히 짝사랑을 했다.
지금 돌아보면 웃기다. 창피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땐 그게 진짜였다.
그 사람 덕분에 1년만 더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려던 계획은 미뤄졌다.
UX 디자이너 과정을 제너럴 어셈블리에서 마친 뒤 귀국하려 했지만, 그를 더 알고 싶다는 마음에 몇 년을 더 머물렀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시기에 나라에서 모든 비즈니스를 닫으라는 비상 셧다운이 시작되자, 감정 기복이 예민했던 그 사장은 어느 날 나에게 크게 화를 냈다.
그가 내게 소리를 질렀던 순간, 갑자기 모든 게 허무해졌다.
나는 조용히 짐을 싸서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내 회사를 만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일보다 사랑에 더 목매었던 것 같다.
일에서의 성공보다는 누군가의 인정, 따뜻한 말, 작은 친절 하나에 더 마음이 흔들렸던 사람.
그래서 가끔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그저 사랑에 굶주렸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게 정답은 아니더라도, 그 시절의 나는 분명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나를 증명하려고만 하던 애송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