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가방 두 개, 9년

8장. 멈춤, 그리고 돌아옴

by hellomonkeystar

그렇게 나는 돌아왔다.
견딜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더는 버틸 수 없었다.

LA 생활의 마지막은 온몸을 짓누르는 고통으로 마무리되었다.
한인타운에서 유명하다는 한방병원의 카이로프랙틱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나오는 길, 나는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휠체어를 타야 했다.
그 순간, 뭔가가 끊어졌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괜찮을 거야'라는 희망이 조용히 꺼졌다.

그 후에도 여러 명의 의사를 만났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냉담했고,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은 더 큰 외로움이 되었다.
한 신경외과 의사는 내 고통을 말하자 대뜸 화부터 냈다.
“누가 당신을 보냈어요?”
나는 말을 잇지 못했고, 그 자리에서 눈물이 터졌다.
그러자 그는,
“책임은 내가 못 져요. 이 서류에 사인하면 시술은 해줄게요.”
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가져간 MRI CD조차 보지 않았다.

다음으로 찾은 정형외과 의사는,
“이건 내가 치료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하고 간단히 선을 그었다.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나는 환자로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
단지 '불편한 존재'일 뿐이었다.

결국 나는 다시 프라이머리 닥터에게 갔고, 거기서 또 다른 신경외과 의사를 소개받았다.
그렇게 병원을 전전하는 동안 고통은 점점 더 깊어졌고, 나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그날, 나는 결정을 내렸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귀국을.
이제는 미국이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느꼈고, 나도 그 땅에서 나를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자동차는 헐값에 팔아버렸고, 짐은 대강 꾸렸다.
결정하고 나서 단 이틀 만에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서는 앉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다행히 코로나 시기였기에 비행기는 거의 비어 있었고, 승무원이 배려해 주었다.
나는 앞좌석 바닥에 담요를 깔고 누운 채로 귀국했다.
그 상태로 열두 시간을 넘게 날았다.
누군가에겐 불편한 여정이었겠지만, 내겐 생존이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동생이 마중 나와 있었다.
동생의 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는 길, 차창 밖으로 어릴 적 살던 동네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울었다.
멀리 돌아,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내 미국에서의 긴 여정은 끝났다.

그 후, 아파트를 정리하기 위해 한 번 더 미국에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공항에서 나는 붙잡혔고, 바로 리턴되었다.
유학생 신분이었을 때, 합법적이지 않은 형태로 일을 했던 기록 때문이었다.
입국은 거절당했고, 미국의 문은 조용히 나를 밀어냈다.

부모님은 오히려 안도하셨다.
“이제 거기 가지 마라.”
“잘 돌아왔다.”
그 말들이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날카롭게 다가왔다.

나는 미국에서 모든 걸 걸고 버텼다. 결국 가져온건 다시 가방 두개 가져 갔던 그 가방 사이즈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 끝은 이렇게 쓸쓸하게 마무리되었다.
그곳에서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나는 끝까지 살아내려고 애썼다.
그건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내 시간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사촌 오빠 생각이 난다. 주차 사인도 제대로 못읽고 주차도 잘 못하는 나는 잘못 주차해서 어느날 차가 견인이 되었고 겨우 400불이 없어서 오빠에게 울면서 전화하자 오빠가 한달음에 달려 와서 차도 빼내주고 집에 데려다 주었었는데 지금도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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