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가방 두 개, 9년

9장. 돌아왔지만, 돌아오지 않은 사람처럼

by hellomonkeystar

한국으로 돌아온 뒤, 나는 돌아오지 않은 사람처럼 살았다.
마치 아직도 LA에 있는 것처럼, 거기에서 계속 일하고 있는 사람인 척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걸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몇 년 동안 쌓아온 브랜드, 힘겹게 얻은 거래처, 나를 믿어준 사람들.
그 모든 걸 '귀국'이라는 두 글자와 함께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돌아오고도, 돌아오지 않은 척했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일은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진다.
내 인스타그램 계정이 해킹당했다.
몇 년 동안 만들어온 작업물과 기록들, 팔로워들과의 소통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손끝으로 쌓아올린 시간들이 허무하게 사라진 그 날, 나는 조용히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 와중에도 LA에 있던 직원과는 계속 연락을 이어가야 했다.
그녀의 짜증은 점점 늘어갔다.
시차 문제도 있었고, 코로나로 인한 외부 스트레스도 컸던 것 같다.
그녀도 지쳐 있었고, 나도 여유가 없었다.
그 시기엔 누구 하나 마음의 여유를 갖기 어려웠다.

그런 혼란 속에서, 고등학교 친구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났다.
변호사였고, 키도 크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잘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늘 내 안의 컴플렉스와 싸워야 했다.

누군가의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너 같은 사람은 돈이 없어서 혼수를 못 맞출 거야. 그런 사람과 결혼하는 건 무리야.”
그 말이 자꾸 마음을 찔렀다.
누가 한 말인지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도 잊었지만
그 말 한 줄이 자꾸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그의 부모님은 시골 출신이라 기대가 클 거라는 이야기.
나는 그 기준을 맞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와 헤어졌다.
‘내가 부족하니까’라는 이유로 혼자 상처받고 혼자 끝내버렸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 바보 같았다.
왜 그렇게 쉽게 흔들렸을까.
왜 나 자신보다, 타인의 말에 더 많은 무게를 실었을까.
그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나는 그 말에 너무 많은 것들을 빼앗겨 버렸다.

사람은 급으로 나뉘지 않는다, 체급으로 나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고 싶으면서도, 나는 스스로를 가장 낮은 곳에 두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흘렀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긴 휴식 같기도 하고 정체된 시간 같기도 한 2년이 흘렀다.

부모님 집에서 살면서 많이 싸우기도 했다.
작은 말다툼도 있었고, 깊은 상처도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들이 내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했다.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던 시간 속에서
조금씩, 다시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프리랜서 UX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며, 틈틈이 주말에는 과외도 한다.
불안정하지만 자유롭고, 고단하지만 내가 선택한 삶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나는 다시 걷고 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하지만 이번엔, 내가 나 자신으로 살기로 마음먹고.


내가 꿈꾸던 그 화려하고 성공적인 모습의 나는 아니다. 그런 모습이 될거라는 자신을 이젠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하루 살아간다 할 수 있을거라 이제 믿지는 않지만 말이다.


뭔가를 이루어서 유퀴즈나 세바시 테드톡에 나오는 사람이 될거라고 믿었는데 이렇게 너무 평범하다 못해 더 못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서 나는 내 자신에게 실망감을 느끼지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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