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확고 해진 가치관에 맞춰가는 연애를 해야한다.
그가 움직이는 모든것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목표가 정확하고, 낭비가 없다.
이것이 내가 느끼는 그의 행동 반경이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에게 배푸는것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가족이라도 노력하는 자에게만 배푼다.
그는 주어진 환경에서 차근 차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고,
나는 주어진 환경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그 환경을 벗어나거나 바꾸는 사람이다.
두달간의 만남 속에서 내가 느끼는 그와 나의 차이다.
비슷한 지역에서 나고 자랐지만 나는 20대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는 그 험난하다는 전문직 공부를 2년전에 마치고 직장을 다니는 사회 초년생이다.
출장을 가야 하는 그를 따라 나도 일을 만들어 서울길에 쫄래 쫄래 따라갔다. 일이 끝나고, 지방에는 많이 없는 이국적인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내려오는 길이 행복한 코스였다.
하지만 어젠 그렇지 않았다.
으레 나는 차를 끌수도 독립도 할 수 있는 벌이를 갖고 있지만 30만원 짜리 아울렛에서 파는 지고트 원피스도 사지 못하고, 모든 스트레스와 플렉스를 음식으로 해결 한다.
명품가방이라고는 몇년전 미국에 놀러온 동생이 사준 작은 구찌 숄더백 하나이다.
그가 추천한 브라질리안 바베큐를 먹으러 갔다. 9가지 종류의 스테이크를 갖다주는 예약하지 않으면 못먹는 레스토랑이라고 했다.
문득 향수가 일어났다. 그로브마켓의 파머스 마켓에서 뷔페처럼 그람으로 담아 근처 브류어리에서 갖다 파는 맥주나 와인 한잔을 가지고 먹었던 평범한 음식중에 하나였으니까.
또는 그런식의 레스토랑에서 한번씩은 가는 나에게는 추억이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그에게는 새로웠겠지만 나에게는 새롭지 않았고,
음식에서 많은 행복을 느끼는 나는 처음 부터 갖다주는 닭가슴살에 베이컨을 말아서 주는 고기를 묻지도 않고 주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먹고 싶지 않으면 "조금만 주세요"라고 말했고, 그는 깜짝놀라 "여긴 9가지 종류 고기가 있어, 원래 돌아다니면서 주는거야, 혼자먹는것도 아니면서 왜그래"
나는 놀랐다. 삐까냐라 든지 램이라든지 한국에서는 비싸서 잘 먹지 못하는 스테이크 부위를 먹고 싶었고, 당연하다는 듯이 먹고 싶지 않았으니까,
술은 마시지 않지만 특별히 음식에 페어링이 잘될거 같은 와인을 주문하는데 오빠는 운전을 해야하니 나만 먹고 싶었고, 한잔이어도 많았다.
서버를 불러 글래스로 파는 와인이 있냐고 물었고, 없다고 했다. 나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레드밋을 파는 가게에서 어떻게 와인을 글래스로 파는게 없다는 말인가.
술을 먹지 않기에 시킨 논알코올 맥주도 하필이면 맛이 없는 음료였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또 다른 서버를 불렀고, 한잔으로 파는 하우스 와인(식당에서 대중적으로 무난한 와인을 대량으로 구매해서 파는 와인 보통 저렴하고 실패할 확률이 적다.)이 없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메니져를 모시고 왔고, 그 메니져는 여름에 한잔씩 파는 와인 행사를 하긴 하지만 지금은 하고 있지 않고, 현재는 하이볼 행사를 하고있다고 했다.
세상에, 레드밋 스테이크를 파는 집에서 와인을 마실 수 없다니, 나는 그 아쉬움에 슬픔을 느끼기 까지 했다.
하지만 앞에 앉아있는 그 남자는 내편이 아니라 그들의 편이었다. 오빠가 아니었다면 편한 사람이었다면 그냥 그중 저렴한 와인한병을 주문해 한잔만 마시고 남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에도 오빠는 나와 먹는양이 달랐고, 눈치를 보았다.
지방에서는 많이 팔지 않는 구운 파프리카와 아스파라거스를 잔뜩 담아왔다. 과카몰리가 맛있어서 좋았고 살사도 제대로된 맛을 내서 기뻤다.
오빠는 뭘 이렇게 많이 퍼왔냐고 말했다. 너무 서운했다. 많은것을 포기하고온 미국의 삶에서 그나마 향수를 채우는 것은 먹는것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한국음식점을 찾아 다니며 그리워했던것 처럼 말이다.
당연히있어야 하는 메뉴가 없어서 나는 슬펐지만 그는 나에게
나의 기준과 여기의 기준은 다른거라고 이 식당에서 제공하는 그대로 먹어야 하는거라고 모든 사람을 맞출 수 는 없는거라고 이야기 했다.
자신도 어릴땐 그랬지만 본인의 부모님이 식품제조업을 하시면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 편을 들지 않냐고 묻자 그는 그 사람에게 왜 없냐고 같이 따져야 하냐고 물었고 나는 그 사람들이 없을때 내편을 들어야지라고 하자, 아무말이 없었다.
친한 친구에게 우리의 첫 싸움을 이야기 했다. 그녀는 이건 단순히 식당에서의 음식의 취향차이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른것이라고 말했다.
너는 니가 원하는거에 당당히 주장하고, 권리라고 생각하면 요구하는 스타일이지만
그는 둥글 둥글하게 그냥 넘어가고, 너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유난떠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 기차표를 산 그에게 내가 밥을 산다고 말했고, 한사람당 칠만원이 넘어가는 식당이라면 적어도 이런것은 갖추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것들이 존재하지 않았고 나의 그날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좋아하는 시나몬 파우더를 발라 구운 파인애플도 없었고, 으레 있어야 하는 푸딩같은 전통 디저트도 없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문득 친구들과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갔던 일이 생각이 났다. 거기선 다행히 와인 한잔을 팔았다. 친구지만 한살 많은 언니가. 내 눈앞의 라자냐를 한사람분량으로 썰고 있었는데, 그는 나에게 왜 나보고 안하냐고 말했다. 그때는 생각을 못했지만 아마 내가 나이가 어린 사람어서 였을것이다.
나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넘겼다. 패밀리 스타일로 공유하는 라자냐를 스쿱으로 원하는 만큼 덜어 먹는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놔뒀고, 그가 더 가까이에 있었는데 왜 나보고 시키는지도 황당했다. 갑자기 아빠가 생각났다. 친척들과 있을때 닭고기를 바르고 있으면 아빠는 하지 못하게 했었다.
공유하는 음식에 각자의 포크 나이프로 자르는것이 싫어 서버를 불러 여분의 포크와 나이프를 주문 하는 나에게 하지말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점을 나는 우리가 나이가 충분히 먹고 하는 연애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비슷한 학교에 어린 나이에 cc로 만났다면 이런 고민을 했을까? 그냥 니가 하자는 대로 하거나 아 그렇구나 그래 그래 니말이 맞아 내말도 맞고, 함께 이렇게 해나가자라고 그 가치관을 함께 쌓는 과정에서 만났다면 이런 작은 다름을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취미도 비슷하고 입맛도 비슷하고 나를 생각해주는것 따듯하게 말해주는것 그가 가족을 챙기는 모습들 이 모든것들이 그를 좋아하게 만든 이유였는데 사소할 수도 있는 사건에 나는 다시 한번 객관화 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남자와는 더 긴 안정적인 연애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단 오늘은 우리 대화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