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6주 차쯤, 내게도 입덧이 찾아왔다. 수시로 속이 메슥거리고 적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토는 안 했지만 속이 항상 더부룩한 느낌에다 울렁거려서 음식을 양껏 먹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 입덧을 ‘술 마신 다음 날 움직이는 배에 탄 것과 같은 느낌’에 비교했던데, 딱 그 비유가 들어맞았다. 소주 반 병이라는 초라한 주량도 모른 채 마냥 신나 들어가는 대로 술을 마시던 대학 새내기 시절, 다음 날 술이 깨며 느꼈던 고통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는 먹는 낙으로 사는 사람인데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그나마 좀 나았다.
힘들었던 몇 주가 지나고, 입덧은 먹덧(먹는 입덧)으로 바뀌었다. 시도 때도 없이 음식이 당겼다. 특히 매운 음식과 빵, 디저트류를 끊임없이 먹고 싶었다. 원래는 빵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내게 빵이란 어쩌다 한 번 빵집을 지나갈 때 냄새에 못 이겨 사 먹는 음식이었을 뿐, 절대 빵이 목적 그 자체가 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임신하면 식성이 완전히 뒤바뀐다더니, 에그 타르트와 스콘, 명란 바게트 등 종류도 다양한 빵을 매일 사 먹게 됐다. 살이 급격히 찌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아기가 먹고 싶은 거니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를 했다. 그런데 식욕을 소화능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오후에 간식으로 빵을 신나게 먹고 저녁 식사도 하고 나면 어김없이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했다. 그런데도 야식이 너무나도 먹고 싶었다. 밤 10시에 엽떡이 너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남편이 나가서 사 오기도 했다. 하지만 저녁 식사도 소화가 안 됐는데 야식을 먹으면 다음 날 어김없이 속이 두 배로 괴로웠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요리 사진과 영상을 찾아보며 대리 만족을 하는 날이 늘어갔다. 사람들이 이래서 먹방을 보는구나, 싶었다.
우리 집에서 식단을 담당하고 있는 남편은 내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지 않는다고 걱정이 많다. “임산부가 섭취해야 하는 영양소” 기준표를 정리해 매일 내가 먹는 음식 성분과 비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명란 바게트가 먹고 싶다는 내 말에 사 오면서도 ‘밀가루만 먹으면 몸에 안 좋을 텐데...’ 하고 말 끝을 흐린다. 남편의 성화에 눈치 보며 우유와 견과류를 먹으면서도 있다가 불닭 볶음면을 먹을 생각에 군침이 돈다.
임신 기간 동안 살이 얼마나 찌려고 이러나 걱정이 되면서도, 입덧 기간이 그나마 빨리 끝나고 먹덧으로 넘어간 것에 감사하다. 비록 여전히 소화 불량에 시달리지만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는 것과 선선한 가을날 산책하며 소화시키는 과정 자체가 행복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