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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잇 Nov 08. 2020

하이힐을 신지 못하는 여자

어릴 때, 어른이 된 후 꼭 해보고 싶었던 로망 중 하나는 높은 하이힐을 신고 또각거리며 걷는 것이었다. 아찔한 힐에 정장을 차려 입고 당당하게 직장을 누비며 스마트하게 일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커리어우먼의 모습에 가까웠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타일 대변신에 성공한 앤드리아와,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당당하고 패셔너블한 뉴요커 작가 캐리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이 하이힐이다.


하이힐은 발을 까치발 상태로 고정시키기에 키가 더 커 보이게 해 주고 각선미와 비율을 살려 준다. 또한 하이힐을 신으면 자연스럽게 허리를 곧게 펴고 걷게 되기에 포즈에 당당함까지 실린다. 메릴린 먼로는 ‘하이힐을 누가 발명해 냈는지는 모르지만 모든 여성들은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이힐은 그만큼 많은 여성들에게 포기할 수 없는 존재로 꼽힌다. 


대학생이 되어 고대하던 하이힐을 처음으로 신어본 날이었다. 7cm 위로 솟아오른 것도 잠시, ‘악' 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며 발목을 삐끗했다. 도도하게 또각거리며 걷기는커녕 넘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마침내 용기 내어 첫발을 내디뎠을 땐 좁은 볼과 뾰족한 발가락 부분에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특히 나는 발볼이 넓고 엄지발가락이 약간 튀어나와 무지외반증의 기미가 있기에 한 발씩 걸을 때마다 점점 더 심한 통증이 가해졌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 고통을 참아야 하는가’라는 생각까지 들자, 바로 하이힐을 벗어던졌다.


그렇게 몇 년 동안 하이힐과 그와 함께 따라오는 각선미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살다가, 결혼 전 남편에게 굽 높은 웨딩슈즈를 선물로 받았다. 아무리 힐을 신지 못한다고 해도 결혼식에서는 더 늘씬하고 예뻐 보이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닐까. 눈을 꼭 감고 8cm짜리 하이힐을 신었다. 덕분에 나는 그날 하루 175cm의 키 큰 신부가 되었지만, 식 내내 위기가 많았다. 버진로드를 걸어가며 치렁치렁한 드레스와 익숙하지 않은 높은 굽에 휘청거릴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최대한 천천히 걸으며 제발 넘어지지만 않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바라고 또 바랄 뿐이었다. 또 식 2부에서 하객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다닐 때쯤엔 발이 너무 아파 맨발로 걷고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식을 마쳤지만, 내 가엾은 발은 빨갛게 퉁퉁 부어 있었다. 너무나도 예쁜 내 웨딩 슈즈는 그 후 지금까지도 상자에 넣어 신발장 높은 칸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아찔한 힐에 세련된 정장의 꿈은, 그렇게 나의 발 건강과 편의와 맞바꿔버렸다. 굽 높은 예쁜 신발들을 보면 아직도 눈길이 가고 고개가 돌아가기는 하지만, 발이 피곤하면 몸 전체가 그 무게와 피로를 고스란히 견뎌내야 하기에 발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지켜주기로 했다. 


웨딩 슈즈를 자주 신지 못해서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결혼식 등 특별한 날에는 가끔씩 신기도 한다. 운동화를 신고 따로 챙겨가서 차에서 갈아 신고 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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