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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잇 Sep 26. 2020

김밥으로 시작해서 김밥으로 끝나는 하루

소울푸드, 김밥

김밥은 나의 소울푸드다. 영양가도 많고, 속이 든든하고, 무엇보다 참기름과 어우러진 재료들이 감칠 나게 맛있다. 가끔 김밥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당기는 날이 있다. 그 날은 남편과 함께 직접 김밥을 말아먹는 날이다.


물론 사 먹는 것도 맛있지만, 우리는 직접 김밥을 말아먹는 걸 좋아한다. 김밥 열 줄 분량의 재료를 사면 단무지와 당근, 우엉, 햄 등이 들어있다. 여기에 계란 지단을 부쳐 길게 썰어내고, 치즈, 소시지, 참치, 깻잎, 삼겹살, 어묵 등의 추가 재료를 가지런히 준비해 둔다. 물과 참기름을 그릇에 각각 담아두고, 밥에 참기름과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다. 이렇게 재료를 준비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린다.


마침내 김밥말기 시간이다. 남편과 식탁에 마주 앉아 김을 펼치고 밥을 얇게 펴 바른다. 첫 번째 김밥은 치즈 김밥, 두 번째는 삼겹살 김밥, 세 번째는 어묵 김밥. 재료를 손에 잡히는 대로 취향껏 조합해 두툼하게 밥 위에 쌓은 후 조심스레 말면 된다. 김밥말이는 따로 없어, 모양은 삐뚤빼뚤하다. 다 만 김밥에는 참기름을 바르고, 칼로 썰어 마무리한다.


우리는 두 명이라 네 줄이면 배가 부르지만, 김밥 세트는 열 줄 분량이기에 남기면 골치가 아프다. 나중에 다시 재료를 나열하고 세팅하느니, 그냥 지금 다 싸 버리자는 생각에 열 줄을 다 완성해 버린다.


꼬다리부터 먹으라고 타박하고, 서로의 김밥이 더 못생겼다고 놀리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흘러 있다. 준비 시간이 길었던 만큼, 설거지도 산더미고 뒷정리도 오래 걸린다. 그 날은 둘이서 아침, 점심, 저녁을 다 김밥으로 때운다. 김밥으로 시작해서 김밥으로 끝나는 하루다.


김밥을 먹고 싶을 때마다 밖에서 사 먹으면 시간도 아끼고 훨씬 손쉽겠지만, 각종 재료를 열심히 손질해 정성껏 김에 올려 삐져나오거나 터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마는 과정이 참 즐겁다. 남편과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김밥이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진다. 굳이 몇 시간을 들여 가며 집에서 김밥을 말아먹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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