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사는게 좋은 이유

5년의 경력단절을 극복한 30대 아이 둘 엄마

by 영어는케이트쌤

뉴질랜드와서 살면서 느꼈던 힘든 일들만 늘어 놓은 것 같아 오늘은 좋았던 경험을 써보려고 한다.

해외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20대 후반에 늦깎이 신입사원으로 회사생활을 했다. 주변에서 나에게 '여자는 30넘으면 시집 가기 어렵다'는 조선시대 조언을 2012년에 많이 해주었다. (그 조언을 해주셨던 분들은 30대 중반에 시집 장가들을 가셨지만...)

무튼 그렇게 딱 30에 알맞게 시집을 갔고 나름 허니문 베이비가 바로 생겨 아이를 순탄하게 가졌고 남편의 내조를 위해 일을 관두고 육아에 전념했다.

어려서 맞벌이 부모님의 관심을 많이 못받은 탓에 그것이 나에게 크나큰 상처라 생각이 들어 모든 걸 접고 아이둘을 키우는데 전념했다.

내가 내 과거 상처에 너무 얽매여서 였을까... 나 자신이 사회적이고 내 직업 갖기를 좋아했다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무시해 버렸다. 아이를 키우며 작게는 쇼핑몰도 운영해봤고, 영어학원에서 파트로 일도 해보았지만 커리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 였다.


역시나.. 부모님의 도움이 없이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력단절의 시간이 길어지고 나니 부모님께 육아지원을 허락받는다 하여도 제대로된 직장으로 복귀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스위스에서 호텔학교를 졸업하고 영국계 대학의 학사를 하나 더 가지고 있었던 덕에 뉴질랜드에서 취업은 순조로웠다. 단,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한 군데 5성 호텔의 컨시어지에서 연락이 왔다. 수퍼바이저 포지션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잠시 망설여 졌다. 컨시어지 팀에 들어가면 발렛파킹, 무거운 짐 들기 등등 여자로써 힘든 일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그 일을 하면서 내가 더 나은 직장을 구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뉴질랜드가 남녀차별이 참 덜해서 좋다고 생각한다. 아주 없지는 않지만 회사의 높은 직급에도 여성비율도 높은 편이고...


죄다 남자 뿐인 팀을 이끌어야 했기에 30kg 짜리 여행가방을 번쩍 번쩍 들어 트롤리에 실어 나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내가 여자라고 뺀다면 팀장으로써도 우스울 것이고, 남녀차별에 대해 논할 수 없는 입장이 되버리는 것이 싫었다.


아이들 15키로 될때까지 아기띠에 업어봤던 나니까... 그리고 내가 빨리 자리 잡아야 우리 가족이 편할 것 같으니까... 여러가지 동기부여로 몸을 아끼지 않았다. 가끔 바쁜날에는 내가 발렛파킹한 차만 30대 정도가 되었다. 다른 부서 여자 동료들은 치마 입고 서있을 때 바지 입고 차를 운전하고 짐을 날랐지만 즐거웠다. 사무실에 앉아 있거나 데스크에 서있는 것 보다 활발한 업무라 나쁘지 않았다.


1년 동안 일하면서 어느날은 몸이 너무 쑤시고 아파 집에와서 몰래 운적도 있고.. 오히려 뉴질랜드 손님들은 편하게 내가 도와주는 것을 받아들여 주는데.. 가끔 한국손님들은 왜 여자가 이런일을 하냐며... 친절을 베푸시지만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불편하게 느껴졌다. 나를 위해 해준 말이겠지만, 내 자존감을 지키는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를 채용해 주었던 팀장(치프 컨시어지)은 좋은 멘토였다. 여자라고 스스로 약하게 생각하지 마라. 남자들만인 팀을 이끌려면 강해야 한다고 늘 다독여주던 사람이었다. 팀장의 추천덕에 2019년 중순에는 뉴질랜드 컨시어지 협회에서 주는 상 후보에도 오를 수 있었다.

뉴질랜드 호텔업계의 주요인물들에게 나를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고 기회였다.


5년이나 단절 되었던 내 경력을 뒤로한채 나를 믿고 일을 맡겨 주고 코칭해 주던 팀장이 너무 고마웠다. 컨시어지로 일하면서 손님들의 여행 상담 및 예약 그리고 레스토랑 예약등을 도우며 크고 작은 로컬 회사들과 친해졌다. 그 회사들이 무료로 제공해주는 식사 또는 여행상품들도 즐기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메니저 자리까지 하다가 경력이 단절 되었던 터라 다시 어느정도 승진하고 싶은 욕심이 많았었다.


1년 동안 그 회사에 다니면서도 최소 일주일에 2~3군데는 이력서를 넣어 보았다. 그렇게 열달이 흘러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공채 시험을 보게되었고 300명 이상 지원한 가운데 최종 12명 안에 들게되었다. 최종 12명은 시드니로 와서 그룹으로 면접을 보게 되어있었다.


주최측의 지원으로 비행기에 몸을 싣고 시드니로 향했다. 하루 종일 스케쥴이 빡빡한 시험이 었다. 성격검사, 리더쉽 유형검사, 롤플레이, 프레젠테이션 등등 정신없는 하루였지만 간절했던 만큼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60:1의 경쟁을 뚫고 최종 5인에 뽑혀 지금 회사에 메니지먼트 트레이니로 들어오게 되었다.


앞으로 10개월 후면 나도 메니저를 달게 된다. 아이둘을 데리고 시간을 쪼개가며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나에대한 보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운도 따라 주어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뉴질랜드가 실업율이 낮은편이고 대학 진학 및 졸업율도 낮아서 나에게 오히려 기회가 많았던 것은 아닌지 생각을 했다.


노동법이 엄격해서, 연봉으로 받기보다 시간으로 받으면 야근도 많이 안하는 편이라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넉넉하다.


좋은 공기 마시며 넓은 대지에서 뛰어놀고 자연과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을 보자면 또 잘 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전 장성규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유튜브로 보다가 장성규 어머니께서 노는 사람도 많으니 일 많은 걸 복으로 생각해야 된다 라고 하신 말씀이 너무 마음에 와닿는다. 사실 뉴질랜드가 나에게 외국이고 타지이기에 현지에 자리잡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나에게 기회의 땅이었고 나의 고생에 충분히 답례를 해주고 있기에 감사한 마음이 크다.


고생했고 지금도 하고 있고 사는데 불편하고 느리고 답답한 점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한국에서 장애물로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쉽게 넘어 설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럽다.


요즈음은 비자 받기가 어려워진터라 언제까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곳에서 쌓은 경험들 보낸 시간들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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