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The Tree Mar 20. 2020

왜 미국에서는 화장지에 집착할까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액션

미국은 지난 13일 코로나 19 확산과 관련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전과 후로 나뉜다. 미국은 물자가 풍부한 나라고  마켓에만 가면 수많은 물건들이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줄 서 있었다. 그런데 13일부터는 마켓 선반이 텅텅 비어있고 바닥을 드러낸 냉동고가 을씨년스럽다. 마켓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하고 나오는 사람의 숫자에 맞춰 그만큼만 입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문제의 화장지는 없다.  이와 관련된 기사에는 '왜 미국 사람들은 화장실 휴지에 집착할까?, 미국 사람들은 화장실만 가나?, 물을 사용하면 되는데, 무식하군...'등등 다양한 댓글이 올라와 있다. 내가 생각하는 화장실 휴지에 대한 집착은 '공포 확산'과 '무저항'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액션' 때문이다.


공포 확산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와 트럼프 행정부는 계속 서로 다른 말을 해왔다. 한쪽에서는 긴급한 상황이라고 했고, 다른 쪽에서는 통제하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시민들은 혼란스러웠고 두렵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고, 모든 마켓의 텅텅 빈 선반은 이 집단공포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그래, 대통령이 곧 마켓 선반이 다시 채워질 것이라고 했잖아. 이런 상태가 오래가지는 않을 거야'라고 위안을 삼는다. 그런데 막상 마켓에 가면 사람들은 긴장된 얼굴로 카트 하나 가득 물건을 쓸어 담고 여전히 선반은 텅텅 비어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자책한다. '그러니까 미리미리 사다 놨어야지. 사람들이 그렇게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니까. 멍청아'라고.   


무저항

미국 사람들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저항하지 않는다.  며칠 전 유럽에서 오는 외국인에 대한 사실상의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한 가운데 유럽에 머물던 미국인들이 급거 귀국길에 오르면서 시카고 오헤어 공항, 댈러스 포트워스 등 미국 내 일부 공항에서 큰 혼란이 빚어졌다. 공항 도착 후 수하물을 찾는데 6시간, 입국 통관을 마치는데 추가로 4시간이 소요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사진에는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은 수 백명의 승객들이 마치 콩나물시루처럼 시카고 오헤어 공항 통로를 가득 메우고 길게 줄을 선 채 입국 수속을 기다리는 모습이 담겼다. 수많은 승객이 쏟아져 나오는데 발열 체크 등 입국자들에 대한 강화된 검역 절차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그 무리 속에서 최대 10시간 기다리면서도 미국 사람들은 항의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공권력에 대한 저항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저항에는 늘 무서운 벌이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어 경찰의 말을 듣지 않거나 억지를 썼다가는 총에 맞는다. 


현재 우리 동네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은 중국사람과 소수 한국사람뿐이다. 미국에서는 미세먼지 문제가 없다 보니 평상시 마스크는 페인트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사다 놓은 마스크도 없고 실지 마스크를 어디에서 살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질병관리국에서는 마스크보다는 손을 자주 씻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지금 미국 사람들도 마스크를 쓰고 싶을 것이다. 집에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불량품 마스크가 하나 있어서 그걸 쓰고 나갔더니 그 안정감이란!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마스크는 살 수 없다. 그래도 미국 사람들은 언제 마스크를 살 수 있을지, 왜 마스크를 생산하지 않는지 또는 왜 한국처럼 정부에서 마스크를 나눠주지 않냐고 항의하지 않는다.  


화장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액션


만약 오늘 발열, 기침, 호흡곤란이 온다면 나는 어디에 연락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그런 가이드라인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신문을 보면 이런 증상이 있으면 응급실에 갈 생각 말고 담당의사에게 먼저 연락하라고만 한다. 미국의 의료보험은 민영화 시스템이다. 의료수가가 살인적으로 높은 탓도 있겠지만 민영 보험사들의 보험료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미국 국민의 15퍼센트인 약 4700만 명이 의료보험 미가입자다. 이들 대부분은 국가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정로도 빈곤하진 않지만 자기 소득으로 비싼 보험료를 지불하기는 어려운 계층이다. 보험이 있어도 본인 부담금이 많게는 5백만 원이라 이래저래 아파도 병원 못 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와 싸워야 하며 그리고 아파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한 이 상황에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액션은 무엇일까? 필요한 물건을 쌓아두고 이 위급한 상황에 내가 주도적인 액션을 취했다는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누군가는 손 씻는 것으로 그 안도감을 느끼겠지만 누군가는 화장지를 쌓아놓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를 한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는 '물'로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미국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한국에는 대다수 가정과 심지어는 식당에도 비데가 설치되어 있지만 미국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미국 극소수 가정과 한국사람을 포함한 아시안들이 사용할 뿐. 미국에서 집을 팔 때 집에 비데가 설치되어 있으면 매수자는 그 집에 매력을 느낄 정도니까. 내가 몇 해전 집을 팔 때도 그랬고 언니가 작년에 집을 팔 때도 매수자는 비데가 설치된 것을 보고 너무나 신기해했고 좋아했다. 그리고 미국 사람들은 쪼그려 앉지를 못한다. 요가 수업에서 쪼그려 앉는 자세를 취할 때면 거의 모든 미국 사람들은 자빠지고 만다. 그러니까 휴지 없이는 정말 난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오늘 이번 주 내내 도전해서 나흘 만에 식용유를 구입했다. 마켓이 문 여는 시간에 가서 줄을 서고 내 순서를 기다려 입장하여... 초라한 선반에 몇 개 남은 식용유를 보면서 갑자기 뭉클해졌다.  그리고 잃어버린 일상이 그리웠다. 

작가의 이전글 내 몸은 알고 있다, 그때 그 맛을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