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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Feb 05. 2020

'밥은 먹었니'는 '사랑한다'보다 한수 위다

'밥은 먹었니'는 '사랑한다'보다 절실하다

'사랑한다'는 말에는 허세가 느껴지지만  '밥은 먹었니'에는 정이 솟아나고 진한 울림이 있다. 그래서 나는 '밥은 먹었니'가 '사랑한다' 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여전히 오글거리고 너무 포괄적이며 한편으로는 추상적이다. 우리와는 정서가 다른 미국 사람들은 고마울 때, 뭔가가 이쁘고 마음에 들 때, 감탄할 때 그리고 헤어질 때나 전화를 끊을 때도 '사랑한다'는 말을 인사말처럼 한다. 그런데 ‘밥은 먹었니’에는 정말 끼니 밥은 먹었는지, 무슨 일은 없는지, 혹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은 건 아닌지… 이런 절실하고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늘 ‘밥은 먹었니’로 일관했던 것 같다. 왜 엄마는 밥에 집착하냐던 아들은 대학 내내 집을 떠나 먼 곳에서 생활을 했고 혼자 산지 3년이 되니까 '밥은 먹었니'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제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심지어는 밥심으로 산다는 게 무슨 말인지, 뜨끈한 국물에 밥을 먹으면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아들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일하지 않는 주말에 문자를 보낸다. 전화를 하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으나 두서없이 말하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채 끊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로 써 보내면 내 마음을 차분히 표현할 수 있어서 좋고 중요한 내용을 전달하기에도 효율적이다. 


아들에게 보내는 내 문자는 늘 ‘밥은 먹었니’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말뜻을 알고 있는 아들은 제법 친절하게 답변을 해준다.


아들은 미국에서도 물가가 살인적으로 비싸다는, 그래서 연봉 10만 불을 받는 사람도 저소득층이라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다. 사회초년생 아들은 당연히 샌프란시스코의 저소득층이다. 그런데 다니는 회사에서 매일 저녁 6시가 되면 인근 유명 레스토랑에서 배달된 저녁이 나온다고 한다. 매일 메뉴를 바꿔가면서 내 아이에게 밥을 먹여준다니 내게 이보다 더 좋은 회사는 없다.  


하루는 오늘 저녁 메뉴라고 사진을 보내왔는데 감귤 소스가 곁들여진 연어구이, 구운 토마토와 허브가 어우러진 치킨구이, 고기와 쌀 그리고 허브로 채워진 구운 피망과 구운 감자, 베이비 시금치 샐러드였다. 그리고 회사 식당에 한국 맥주가 새로 들어왔다며 귀여운 패키지의 한국 맥주 사진도 보내왔다. 나는 '밥은 먹었니'를 제대로 알고 있는, 밥 주는 회사가 정말 고맙다. 


아직도 밥에 집착하는 늙은 엄마는 ‘밥은 먹었니’가 ‘사랑한다’보다 한수 위라고 생각한다. 


아들 회사에서 제공한다는 한국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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