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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Feb 10. 2020

‘니 함 씨부리 바리’ ‘환장하쥬’는 ‘어짜스까잉’

오감이 담겨있는 뜨거운 우리말을 영어는 모른다

번역은 문장에 쓰인 단어를 다른 나라 언어로 바꾸는 단순작업이 아니다.  원문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함은 물론 다른 언어로 재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원문의 문체와 분위기까지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1990년부터 1996년까지 다국적 기업들의 한국 내 홍보를 대행하는 일을 했다. 88 올림픽 이후 수많은 외국기업들이 국내에 몰려왔는데, 한국 매체와 소비자 또는 정부기관과의 소통을 돕는 그런 일을 한 것이다. 출근과 동시에 10개의 종합일간지, 경제지와 업계 전문지를 빛의 속도로 훑어보고 내가 맡고 있는 회사와 관련된 기사를 모아 영어로 번역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육하원칙의 팩트로 구성되어 있는 신문기사를 번역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좀 복잡한 내용의 기사는 차트나 그래프로 설명할 수도 있었으니까. 


외국기업의 홍보를 하면서 수많은 신문기사, 기업소개서, 브랜드 스토리, 신상품 소개, CEO 인터뷰 등 다양한 내용의 번역을 했다. 그러나 내게 번역은 아직도 어려운 일이며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긴다는 것은 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그런 작업이다. 홍보일을 그만둔 후에도 내 직업의 잔재가 남아서인지 신문기사, 광고 카피, 드라마 또는 영화를 보면서 '이런 맛깔난 표현을 어떻게 영어로 옮길 수 있을까?'라고 고심한다. 


서울말이 표준말이고 사투리는 촌스럽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드라마, 영화에 정겨움과 진정한 힘을 가진 사투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영화 ‘친구’는 많은 명대사를 쏟아냈다.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네가 가라, 하와이." 다소 거칠고 무뚝뚝하지만 그 시절 그들의 삶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또 뭐가 있을까 싶다. 


응답하라 1994에서 도희는 아메리카노를 찾는 이상훈을 향해 "창자를 빼갖고 젓갈을 만들어버릴랑께. 생긴 건 돌하루방처럼 생겨갖고 뭔놈의 아메리카노여. 한 번만 더 아메리카노 찾으면 확 청산가리를 퍼부어버릴랑께"라는 살벌한 욕을 날렸다. 그런데 이런 잔인한 말을 하는 도희가 밉지 않았고 재미있었고, 시청자들을 휘어잡았다.  "니 함 씨부리 바리”,“아따 염병, 니도 엄청난 재주다잉”이라는 말도 자주 나왔는데 이걸 “네가 한 번 말해 봐”, "아 제길, 너도 엄청난 재주가 있구나”라고 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응답하라 1994가 아닐 것이다.


번역가 달시 파켓은 영화 ‘기생충’ 번역에서 '짜파구리’를 라면과 우동을 합쳐서 ‘ramdon’으로 번역했다고 설명했다. '짜파구리'를 번역하면서 얼마나 고심이 많았을까 싶다. '짜파구리'는 짜파게티와 면이 굵은 너구리를 알아야 이해가 되는 말이고, '짜파구리' 발음과 억양에서는 흥이 나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워메워메 시상에 어짜쓰까,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징하요, 거시기가 거시기여, 워떠? 환장하쥬, 우짠다, 죽어유우, 맞쥬?, 물렸는겨? 우짠다? 그쥬? 못 당해유'에 푹 빠져있다. 내 나름 억양을 조절해가며 사투리를 구사해보고는 재밌어 죽는다. 


번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표준말로 고쳐서 시도해보지만 사투리의 찰진 맛이 죽어버리고 만다. 내가 알고 있는 얄팍한 영어단어를 이리저리 굴려보지만 나는 할 수 없다. 


달시 파켓님, '거시기가 거시기여'는 뭐라고 번역하면 좋을까요? 

 

완벽한 번역은 없다. 하나의 원문을 가지고 수백 가지의 번역문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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