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청년 May 10. 2020

사랑이 모든 것의 해결책은 아니다.

벨 훅스 All about Love

사랑하면 떠오르는 건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아빠의 사랑은 잘 안 떠오른다)’ , ‘남녀 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난 종교가 없다)’ 같은 것들이다.


사랑이 뭐냐고 물어보면 ‘좋아하는 것',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마음' 말고 특별히 생각나는 게 없다. 책과 노래와 TV에서 사랑은 흘러넘치는 데 그걸 정의하기에는 내 생각이 너무 부족하다. ‘내 목숨마저 내어줄 수 있는 것' 하면 너무 거창한가?


한 때 사랑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라 말했던 기억이 있다.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깨지기 쉬운 게 사랑이다. 감정은 수시로 바뀌니까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고 예전에도 생각했었나 보다.


벨 훅스가 마음에 들어하는 사랑의 정의는 정신의학자 스캇 펙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규정한 것이다. 너무 어렵고 추상적이다. 여기에 덧붙인 말이 더 공감되는데 “사랑은 실제로 행할 때 존재한다. 사랑은 의도와 행동을 모두 필요로 한다.”라고 말한다. 사랑은 마음속에 감정의 형태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사랑은 좋은 의도가 행동으로 나타날 때 존재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고 행동이다.


저자는 애정이 곧 사랑은 아니고,  육체적 폭력만큼 언어폭력도 나쁘며 ‘폭력은 사랑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애정이 지나치면 집착이 되고, 이처럼 모든 감정과 정서를 상대에게 쏟아붓는 것을 ‘카섹시스'라 부른다.


“사랑과 폭력은 공존할 수 없다.” 사랑해서 때리고 상처를 준다면 사랑이 아니다. 어떨 땐 언어폭력이 더 무섭다. 많이들 착각하는데 사랑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거나 상대적인 게 아니다. 분명한 기준이 있다. 어떤 폭력도 사랑은 아니다.


내 아들을 보면 항상 억울하다. 내가 상황을 잘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결과만 보고 혼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항상 좋은 말만 하며 살 수는 없겠지만 가족 간에도 얼마나 많이 서로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로 상처를 주고받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책만 많이 읽으면 뭐해'라는 아들 말이 가슴을 친다.


“남녀를 차별적으로 대하는 사회에서는 남자는 필연적으로 권력을 원하고, 여성은 감정적인 친밀함과 유대감을 원하도록 구조화된다.” 이 세계의 질서는 사랑이 아니라 권력관계로 움직인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사랑이 아니라 권력관계인 경우가 많다. 권력관계는 사랑이 아니다. 권력관계는 남녀 사이뿐만이 아니라 부모 자식 간에도 발생한다. 가끔은 권력관계를 사랑으로 착각한다. 둘 중에 한 사람만 얘기한다면 거의 그렇다.


종교를 믿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 ‘완전'이란 단어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아니라 ‘늘 새로워지려는 의지'를 내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말에 많은 공감이 됐다. 결과가 중요한 시대에 살다 보니 자꾸 까먹는데, 완전함이란 어쩌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말한 거라고 생각하면 다르게 다가온다.


진정한 사랑도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으로 완성된다. 깨달음도 끊임없이 노력할 때 따라오는 부산물일 뿐이다. 이제까지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머리로만 알았던 거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고 행동이다.
사랑의 완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부산물일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함께 읽는 즐거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