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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Dec 19. 2020

왜 우리는 우주를 이해하려 하는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 채사장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다가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궁금해졌고 ‘빅뱅 이전이라던지 우주의 끝 다음은 무엇이 있을까?’ 등등을 궁금해하다가 양자역학을 처음 접하게 됐다. 그래서 김상욱 교수의 ‘양자 공부' 같은 책들을 찾아 읽으며 무언가 굉장한 걸 알게 된 기분에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는데, 갑자기 ‘이런 걸 알아서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의문이 좀 풀렸다.


채사장은 “왜 인간은 우주를 이해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에 ‘내가 바로 우주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것이 이 책의 단 하나의 주제이며 138억 년의 우주와 인간의 역사를 정리하는 이유다. 내가 곧 우주인데 나를 이해하려고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빛은 파동이자 입자인데 관찰 전에는 파동처럼 관측되다가 관찰하는 순간 입자처럼 관측된다. 이것이 양자역학에서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양자 중첩' 현상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에서 처럼 관측되기 전에는 죽어 있으면서 살아있는 이중의 상태에 있게 된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양자 세계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양자 중첩' 현상이 중요한 이유는 관찰자의 존재 때문이다. 관찰하는 자가 없으면 상태가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관찰자는 우주를 존재하게 한 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채사장은 바로 이 관찰자가 나(자아)이고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도 이런 관찰하고 사유할 수 있는 인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이라는 우주를 사유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면, 우주의 존재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동의하는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우주는 내 인식의 한계 안에서만 그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인 거 같다.


사실 양자역학의 중요 현상들인 양자 중첩(죽고 사는 상태가 공존), 양자 도약(차원 이동과 비슷), 양자 얽힘(빛보다 빠르게 정보 전달)은 현재 우리가 있는 차원보다 더 높은 차원이 있다고 가정하면 해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높은 차원에서는 당연한 현상들이 더 낮은 차원에서는 마술처럼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로 흔적들만 관측될 뿐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탄생도 우주의 탄생처럼 신비롭다. 최초에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합성된 것은 초기 지구 공기성분에 번개처럼 전류를 흐르게 했을 때 생겼다는 유명한 실험에서 처럼 가능하지만 유기물에서 곧 최초의 단세포(루카)생명이 탄생한 비밀은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고 한다. 우주처럼 생명도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됐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 전 '축의 시대'라 불리는 시기에 인류의 큰 스승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나왔는데 우리는 이들을 통해 이미 오래전에 ‘자아와 우주의 본질은 하나’라는 일원론의 가르침을 받았다.


고대 인도 힌두교 경전인 베다의 우파니샤드에서 ‘자아인 아트만과 우주인 브라흐만은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범아일여’ 사상이 처음 나왔다.
송나라 출신의 유학자 주돈이는 ‘태극도설'에서 무극과 태극이 실제로는 같은 것인 동시에, 무극이 태극의 가장 처음 상태라고 설명한다. 이를 ‘무극이태극'이라 한다.
불교의 화엄경에서는 ‘세상에 모든 것이 마음에 의해 지어졌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일체유심조’이다.
칸트의 관념론은 인식 주체와 인식대상을 분리하지 않고 외부세계를 내부 세계로 끌어들이는 발상의 전환을 서양철학사에서 처음으로 했다.
독일 신비주의 기독교 사상가인 에크하르트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신이 탄생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지금 우리는 서양의 기독교와 뉴턴, 아인슈타인이 발전시킨 현대 과학의 이원론(나와 세계는 분리되어 있다)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양자역학이 나오면서 기존의 이원론이 조금씩 힘을 잃어가고, 그 대안으로 고대의 큰 스승들이 이미 주장했던 일원론의 깨달음을 채사장은 다시금 끄집어내서 말한 것이다.


채사장은 고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원론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이것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미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은 이미 고대에 다 나왔다. 그것도 2500여 년 전에, 거기서 인간은 많이 나아가지 못했다. 재발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윤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윤회라는 것도 다중우주나 평행우주의 또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의식이 138억 년에 걸친 우주와 지구, 생명과 인간의 역사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해낸 채사장도 놀랍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보다 개인적으로 훨씬 좋았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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