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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May 08. 2021

인간이라는 빈틈

사람에 대한 예의 - 권석천

사람은 사회나 조직을 떠나서 살 수 없다. 사회나 조직도 사람이 모여 만들어진 것인데도, 사람들은 사회 걱정을 하지만 사회는 사람 걱정을 하지 않는 거 같다. 사람은 조직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데 조직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거 같다.


이 책은 조직에 대한 비판과 부적응자에 대한 찬가 같다.


사람이 흑화 하는 이유에 대해서 ‘착하게 사는 것은 높은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지만, 포기하고 내려갈 때는 너무나 빠르고 즐겁다'라고 말한다. 원칙을 지키며 착하게 사는 건 어렵지만 포기하면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


여기에 동원되는 이데올로기는 ‘내가 아니라 조직을 위해'라던지 ‘모두 다 같은 속물인데 뭐가 잘 났다고 양심적인 척하냐'라는 ‘모두가 나쁜 놈이다' 같은 류가 있다. 거기에 현실에서 마치 헌법처럼 사용되고 있는 ‘좋은 게 좋은 거다'와 같은 만병통치약도 있다.


작가는 기자 초년생 시절 경험을 통해서 우리나라 회사조직은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모른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상명하복의 위계질서 속에서 책임지지 않으려면 그렇다. 그러면서도 퇴근 후 회식자리에서도 회사 걱정을 한다.


회사생활을 통해 위에서 아래로 군림하려는 이런 지배 이데올로기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와 같은 말들을 통해 나타나고, 집에서는 자식들에게 언어폭력을 쏟아내며 ‘너를 위해'라는 변명으로 둔갑한다.


‘괴물과 싸우기 위해 괴물이 됐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원래부터 괴물이었던 거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 이렇게 환멸에 빠지게 되면 나부터 살고 보자는 각자도생의 세상이 열린다고 말한다. 각자도생 하는 것만이 살길인 거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이 세상 누군가는 ‘모두가 나쁜 놈’이라는 환멸의 프레임을 만들어야 불공정한 세상을 고착화시키고, 그 속에서 이익을 취할 수 있다.


작가는 영화 트루스에서 부시 대통령의 병역비리를 캐던 기자를 통해, 질 때 지더라도 개기는 게 어떠냐고 말한다. 그것이 ‘나는 나인 것이다.’라는 선언이라고 말한다. ‘나는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런 또라이들이 있기 때문에 각자도생 하는 사회에서 더 나은 사회가 시작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조직에서 부적응자로 찍히면 생계가 곤란하다. 부조리와 합리성을 얘기해도 먹히지 않는다는 걸 몇 번 경험하면 입을 닫는다. 작가의 조직 비판은 날카롭지만 실행은 개인의 똘끼로 끝나고 만다. 어쩌면 이런 무기력의 반복된 학습이 쌓여 지금의 현실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다 이렇게 한번 행복하면 됐죠. 그럼 된 거예요. 자,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그리고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또 만나요. 불행한 얼굴로, 여기 뉴월드에서.” 가출팸을 다룬 영화 ‘꿈의 제인’에 나오는 대사라고 한다. 이상하게 이 문장이 머리를 맴돈다.


세상엔 어쩌다 운이 좋아서 잘 된 사람과, 어쩌다 운이 없어서 안 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인간이라는 한계가,  빈틈이, 운을 만들어내고,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있을까분명한 건 혼자서는 안되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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