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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Jul 31. 2022

삶이라는 선물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죽음 앞에서 지식인의 모습은 초연하지만 외로워 보였다. 지금까지 평생을 추구해 온 지식이나 지혜가 허망할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서 후배들에게 너무 헤매지 말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리 추구의 끝이 신앙으로 귀결되는 것 같은 점은 아쉬웠는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이어령 교수에게는 딸의 죽음이 아마도 종교로 귀의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됐을 것 같다. 사람은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허무와 죽음을 애도하고 극복하려 애쓴다.


육체와 마음과 영혼을 컵에 따른 물로 비유한 부분이 좋았는데, 컵이 육체라면 컵의 비어져 있는 상태(void)가 바로 영혼이고, 빈 컵에 물을 따르면 그 물이 마음(mind)이라고 한다.


비어져 있는 것이 영혼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떤 것도 채워질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떤 것에 종속된 고유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인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운명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도 좋았다. 이어령 교수가 말하는 운명론이란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무리 노력하고 지혜를 끌어모아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그리스식 운명론이라고 말한다.


스토아 철학이 바로 세상에는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두 가지로 구분하고 컨트롤할 수 없는 것에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좀 더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거기에 얽매이고 신경 쓰면 나만 괴롭다.


똑같은 시간을 살아도 이야깃거리가 없는 사람은 산 게 아니야’라고 말씀하실 때는 많이 찔렸다. 정혜윤 작가도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이라는 책에서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나고, 내 가치’라고 말했는데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어떤 이야기가 있었나 생각해 보면 부끄럽다.


아마 대부분 시간에 쫓겨, 흘러가는 대로, 별생각 없이 살아오느라 그랬겠지만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차이점은 그 속에서 이야기를 찾고, 의미를 찾고자 숙고하고 노력했느냐 아니냐에 있을 것이다.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이어령식 삼단논법 같은 패턴의 설명이 너무 좋았다. 예를 들면 ‘젊었을 때는 관심이 최우선, 사오십대가 되니 관찰을 알겠더군, 늙어지니 관계가 남아’ 이런 식이다.


이 책에서 이어령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삶의 고통은 피해 가는 게 아니야, 정면에서 맞이해야지” 이 말 같다. 죽음을 앞둔 교수가 자신에게 하는 다짐일 수도 있다. “결국 큰 얘기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었다’가 전부이기 때문에 작은 이야기 속에 진실이 있다”는 말은 삶의 고통, 즉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각자의 진실이나 지혜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 같다.


그리고 그의 깨달음은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이 말에 담겨있는 것 같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소중하다. 그리고 삶은 내 의지와 노력과 무관하게 나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것이다. 이 선물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내 삶 속에 남에게 전해줄 만한 이야기를 만들고 찾아내서, 내 주위에 들려주는 것이 내가 선물 받은 이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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