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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Feb 13. 2018

사랑하기 때문에

기욤 뮈소

하나뿐인 딸을 유괴당한 아빠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한 상심으로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노숙자 생활을 한다. 그 죄책감이 노숙자 생활을 하면 없어질까? 위안이 될까? 용서를 받는 것인가?


엄마가 간이식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고 그 순서가 됐는데.. 한순간에 그 기회를 잃게 되고 엄마는 자살하게 된다. 나중에 그렇게 된 이유가 의사가 돈 받고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도 그 의사가 죽이고 싶도록 미울 것이다. "복수하는 게 용기가 아니고 용서하는 게 용기"라는데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슬램가에서 갱들에 의해 전신화상을 입게 된다. 복수를 위해 그 갱들을 죽이고 그들의 돈을 훔쳐 도망가서 새로운 인생을 꿈꾼다. 마음속에는 항상 그 죄책감을 품고 있지만 성공해서 다른 사람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된다. 계속 이렇게 사는 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자수해서 죗값을 치르는 게 옳은가? 아니면 더욱 자기 일에 전념해서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게 옳은가?


재벌 상속녀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소녀를 차로 치어 죽게 하고 뺑소니를 치지만 아버지가 무마해주고 그 죄책감으로 더욱 방탕한 생활로 자기를 망치고 마는데.. 뉴스에만 보던 이들이 타락하게 되는 심리상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감당할 수 없는 큰 죄나 실수를 하게 되면 나라도 도망치고 싶을 거 같다. 애써 외면하고 싶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을 거 같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평생 멍에를 지고 괴로워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담담히 받아들이고 책임지는 게 결국은 내가 살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라고 핑계 대거나 정당화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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