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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지만 영원 같아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 존 그린 장편소설

by 푸른청년

“넌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거야.”

먼저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또는 그 주위 사람들을 위로하려고 흔히들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 헤이즐은 이 말이 특히 자신을 불쾌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 말은 살아 있는 사람들은 불멸이라는 주장을 내포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우리는 항상 죽음을 마주하지만 남일처럼 대한다.

그리고 자신은 죽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고 말한다.

하지만 진실은 무의식적인 불안과 걱정, 두려움에 둘러 쌓여 있다.

죽음을 잊기 위해 오버하며 사는 게 인생일지도 모른다.


죽음을 생각하면 이 세상은 무의미해지고, 냉소적이 된다. 별다른 희망이 없어 보인다.


이 소설은 암환자 모임에서 만난 16살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의 사랑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헤이즐이 가장 좋아하는 책인 <장엄한 고뇌>의 저자 반 호텐에게 결말 이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암스테르담으로 여행을 가는 내용이다. 이 책 역시 사춘기 소녀의 암투병 생활을 그렸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암에 걸리게 되면 확실히 죽음이 가깝게 느껴질 거 같다. 우울증과 암, 걱정은 죽음의 부작용일 뿐이라고 말한다.


“우울증은 죽음의 부작용이다.

암 역시 죽음의 부작용이다.

걱정은 죽음의 또 다른 부작용이다.”


암 같은 큰 병에 걸리면 내가 암과 동일화되어 버린다. 병이 나를 규정한다.


“자기 병이랑 동일화되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라는 말은 하지 마.”


하지만 헤이즐은 자신을 병과 동일시하는 걸 용납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결말이 뻔히 예상되는 사랑도 멈출 수 없다.


"모든 구원이란 일시적인 거야. 난 그 애들에게 일 분쯤 시간을 벌어줬어. 그 일 분으로 한 시간을 더 벌 수도 있고, 그 한 시간으로 일 년을 벌 수도 있지. 아무도 그들에게 영원한 시간을 줄 순 없어. 헤이즐 그레이스 하지만 내 인생이 그 애들에게 일 분을 벌어 줬어. 그건 무가치한 게 아니야."


결국 죽음의 공포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사랑뿐이다.

하지만 이 구원은 영원할 수 없다. 일시적이다. 그래도 잠깐의 시간을 벌어주는 것. 그건 무가치한 게 아니라 말해준다. 이게 이 책의 핵심 같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은 착각이라면서도, 잠깐의 시간도 영원처럼 가치 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이 세상은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른다.

“가만히 서있을 때보다 빨리 움직일 때 나이를 더 느리게 먹는대.”


유한하지만 잠깐 영원할 수 있다.

1과 2 사이에도 무한한 숫자들이 있다.


사랑처럼 예술도 비슷하다.

예술은 잠깐의 깨달음이고, 다만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다만 반 호텐 같은 사람들은 사랑과 예술 같은 ‘잠깐의 깨달음’을 무익하다고 말할 뿐이다.


“우리의 분투가 결국에 무익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예술이 우리에게 값진 것을 선사한다는 잠깐의 충격적인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유일한 가치라는 건 가능한 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라는 데에 있나?

이 모든 것에 핵심이라는 것이 있나?”


그래서 잘못은 우리 별에 있다.

유한한 세상의 잘못이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사랑과 예술이 잘못한 게 아니다.

우리는 세상에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고, 모두 죽더라도. 그래도 어쨌든 간에 사랑한다.


“태양이 우리가 발 딛고 산 유일한 지구를 집어삼킬 거라는 것도 알고, 그래도 어쨌든 너를 사랑해.”


“글은 되살리지 못한다. 대상을 묻어버린다.

나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요.

사람들이 남기는 흔적이라는 건 대부분이 상처입니다.”


“진정한 영웅은 사물을 알아채고,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이죠.”


유한하고 별의미 없는 세상 속에서

내 흔적은 상처뿐이지만

그래도 그 흔적에서 뭔가를 알아채고,

주의를 기울여 주는 너를 사랑해.

잠깐이지만 영원 같아.

그걸로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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