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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 조지 손더스

by 푸른청년

이 책은 작가가 되려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도 어떻게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마치 강의실에서 안톤 체호프, 톨스토이 같은 러시아 거장들의 단편 소설에 대한 명강의를 직접 듣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작품들이 왜 명작인지 그 이유를 알려준다.


구성도 각 단편소설 전문을 직접 읽고 해설을 해주는 형식이다. 작가의 해설만으로 원문을 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았다. 작가의 해설이 곁들여졌을 때 방금 읽은 단편이 정말 새롭게 느껴진다.


꿈보다 해몽이 아니라

지금까지 나는 도대체 어떻게 소설을 읽은 것인가 라는 반성을 하게 된다.

여러분들도 한 번 꼭 읽어보시기를 강추드린다.


안톤 체호프의 <마차에서>를 통해 우리는 마리야 안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다.


“마리야는 그를 생각하면서, 그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학교 생각을 하는 척한다.”

“그는 그녀에게 맞지 않는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마음은 계속 그에게도 이끌린다”


마음이 가지만 안 그런 척.

또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우아함을 버려야 하는.

이런 인간의 이중성이 그려질 때 감정이입이 되고 공감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몸의 관능성을 약탈한다 - 데리언 이글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내 욕망이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 자발적으로 인내하게 만든다.


보통 축구에서 빌드업한다고 하는데

이야기도 그런 것 같다.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고,

한 번씩 치고 올라가는 순간의 짜릿함이 있다.


“하나의 이야기는 선형적-시간적 현상이다.

이야기는 일련의 증가하는 박동으로, 각각의 박동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한다.


그렇다면 좋은 이야기란 뭘까?

좋은 이야기는 과잉의 패턴을 만든 뒤 그 과잉에 주목하고 그것을 장점으로 전환하는 이야기다.


보통 과장하면 부정적으로 느껴지는데,

과장을 통해 주목하게 하고, 그걸 장점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좋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게 반전인 걸까.


그럼 위대한 예술은 언제 발생할까?

우리가 어떤 일을 설명하거나 정리하는 일을 시작하기 직전. 그 순간에 가장 지적이고,

그 순간에 위대한 예술이 발생한다라고 말한다.


무언가 이리저리 소재들이 엉크러져 있고,

그걸 정리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순간.

그 순간이 가장 지적이고 위대한 예술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나도 글을 쓰려고 적어놓은 메모들을 정리하다 보면 무언가 일관된 흐름과 방향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럴 때 희열을 느낀다.


그렇다면 예술은 왜 필요할까?

우리가 무언가를 알지만(그것을 느끼지만)

너무 복잡하거나 많아서 정리할 수 없는 순간.

그 순간을 우리는 예술에서 기대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언어 없이 일어나지만 진짜라고 말한다.

언어 없이 일어나는 그 순간 때문에 예술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예술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인가 보다.

결국 좋은 이야기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을 주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좋은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야기는 일화에서 시작한다.

일화가 확장된 것이 이야기라고 한다.


“일화를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확장이다.

갑자기 확장이 일어나는 느낌이 들면,

우리의 일화가 이야기로 변해간다는 신호다.”


확장은 어떻게 시작하는가?

인물에게 구체적 특질을 부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올렌카에게 구체적 특질을 부여하면 그녀를 특정한 인물로 만든 것이다.”

“일단 어떤 특정한 인물이(사실들을 통해) 만들어지면 그다음에 우리는 그녀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많은 일 가운데 무엇이 의미가 있을지 알게 된다. 구체성에서 플롯이 태어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인물들에게 구체적 특질을 부여하면,

그 인물들이 상호반응 하면서 플롯이 만들어지고,

이런 플롯이 모여 패턴을 만들고,

우리는 이 패턴에 이유를 모르고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작가의 계획대로 의도대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인물의 구체성이 이야기를 저절로 끌고 나가게 된다는 의미 같다.


계획은 멋지다. 계획이 있으면 우리는 생각을 중단하게 된다. 그냥 이행만 할 수 있다.”

“작가는 일을 시작하면서 뭘 할지 모르는 사람 - 도널드 발셀미”


계획이 있으면 생각을 중단하게 된다는 말은 나에겐 큰 충격이자 깨달음이었다.

계획을 세우고 시뮬레이션해봤다고 해서 생각을 멈추면 안된다. 진짜 삶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따라서 진정한 소설가는 그 개인의 능력 안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을 넘어서는 지혜를 찾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위대한 소설은 늘 그것을 쓴 사람보다 조금 더 똑똑하다. 자기 책 보다 똑똑한 소설가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소설가는 누구의 대변인도 아닐뿐더러 자기 관념의 대변인도 아니다 - 밀란 쿤데라


작가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글이 멈추고 삶이 시작하는 종류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톨스토이의 <주인과 하인>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야기를 살기 시작하고,

언어는 사라지고,

언젠가 내려야 할지도 모를 결정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래서 위대한 소설을 읽기 전과 읽은 후에 달라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한정적이지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바로 그게 소설이 하는 일이다.

소설은 마음의 상태에 점진적 변화를 일으킨다.

그 변화는 한정적이지만 진짜다.

그리고 이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작가는 거창하지 않지만 소박한 주장을 통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여운과 울림을 준다.

우리가 소설을 읽으면서 얻은 어떤 느낌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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