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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Jul 08. 2018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테드 창


영화 컨텍트의 원작자 테드 창의 중편소설이다. 2011년 sf 소설에서 유명한 휴고상을 받았다. 영화 컨텍트는  테드 창의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 ' 네 인생의 이야기'가 원작이다.


미래에 '블루감마사'라는 회사에서 '디지언트'라는 인공지능 기반의 가상세계에 사는 애완동물을 만든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회사가 망하고 '데이터어스'라는 가상세계도 '리얼스페이스'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넘어가면 갈 곳이 없어진 '디지언트'들과 그 주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인공지능의 진화과정도 사람과의 관계와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복잡한 정신도 혼자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발전한다. 아프리카 반투어로 우분투는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만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p81

"복잡한 정신은 자체적으로는 발달할 수 없다." "정신이란 그냥 내버려 두어도 혼자서 쑥쑥 자라는 잡초처럼 자라지는 않는 법이다." "정신이 그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다른 정신들에 의한 교화가 필요한 법이다."


‘인스턴트라포’는 피부에 붙이는 패치가 나오는데 '옥시토신-오피오이드’ 혼합 호르몬이 분비되어

친밀감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특정 회사에서 디지언트와 사육사 사이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붙이게 하려는 시도가 소설 속에 나온다. 인간의 감정이란 복잡한 정신작용이 아니라 단순 호르몬 작용일 수 있다.


섹스 로봇을 만드는 '바이너리 디자이어'라는 회사가 리얼스페이스로의 이전을 도와주는 대신 섹스 로봇에 디지언트를 사용하게 해달라는 제안을 한다. 당연히 자신의 애완동물이 섹스도구로 사용되는 거에 대한 주인들의 반발이 심하지만 회사의 대응논리가 흥미롭다.


p150

사회가 개인의 욕망에 비정상적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 문제였죠. 우리는 디지언트와의 섹스도 이와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성의 유효한 표현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리라 믿고 있습니다. 디지언트에 대한 여러분의 감정이 진짜이면 인간과 디지언트 사이의 성적 관계는 왜 진짜가 될 수 없다는 건지? 인간과 동물과의 비 성적인 관계는 건전하게 보면서 왜 성적인 관계는 그럴 수가 없을까? 개인적인 혐오감에 기반하지 않은 반박논거는 무엇인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진정한 관계란 무엇인지'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사람과 사람 또는 생물과의 관계만 고려됐다면 이제는 인간과 가상세계의 프로그램 또는 생물과의 관계도 고려되어야 한다.


상대가 애완동물이든 자기 아이든 연인이든, 진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욕구와 자기 자신의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상대방을 위해 희생을 치르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 데릭과 애나는 오랜 세월 동안 함께 디지언트를 키우면서 유대관계를 가져오지만 연인 사이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데릭은 애나를 짝사랑하지만 말을 못 하고 어찌 보면 애나를 위해서, 자신의 디지언트를 섹스 로봇 회사에 넘기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그 사실로 인해 사랑은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점점 더 인간 고유의 것이 무엇인지 불명확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작가는 ‘인간을 데이터베이스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는 모든 특질은 경험의 산물이었다’고 말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데이터가 쌓여도 경험을 대신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p181

경험은 최상의 교사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교사이기도 하다. 잭스(디지언트)를 키우면서 애나가 얻은 교훈이 하나 있다면 지름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 세상에서 이십 년 동안 존재하면서 습득하는 상식을 얻고 싶다면 그 일에 이십 년을 들여야 한다. 이에 상응하는 자기 발견적 방법론을 그보다 더 짧은 시간 내에 조립할 방도는 없다. 경험은 알고리즘적으로 압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디지언트 법인화에 대한 문제도 앞으로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고민거리를 준다. 가상세계의 인공지능도 성숙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면 인간처럼 대우해 주어야 할까?


p189

마르코와 폴로는 인간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을 마치 인간인 것처럼 간주해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대신 데릭의 기대에 억지로 부응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잘못일지도 모른다. 마르코를 존중하고 싶다면 그를 인간처럼 대해야 할까, 아니면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까?


작가는 관계를 통한 경험이야 말로 더 가치 있는 것이고 짧은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진정한 관계는 욕구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고 사랑에는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간관계 사이의 경험은 지금까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쌓이는 것이었고 알고리즘이 구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알파고 같은 현대 과학은 그런 통념을 넘어선 거 같다. 알파고 제로는 이미 인간이 쌓아온 데이터 없이 자기들끼리 학습해서 바둑으로 인간이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올라섰다. 창조력이라는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도 인공지능이 마치 해내는 거 같다.


인공지능이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감정이나 상상력 또는 의식까지 가지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인간이라고 불러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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