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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Mar 17. 2019

불안 Status Anxiety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불안은 흔히들 겪는 감정이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때뿐 만이 아니라 상황 자체가 만들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불안과 함께 산다.


불안의 다른 말은 걱정이다. 걱정해서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걱정한다.


불안의 또 다른 말은 고민이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한다. 이 선택이 미래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한다. 고민하는 이유는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게 무언지 몰라서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이 사회적 지위 때문에 온다고 본다. 지금의 지위에서 언제 내려올지 모른다는 게 불안의 핵심 원인이라고 한다.


높은 지위를 바라는 사람의 마음은 경제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높은 지위에 있을수록 사람들에게 존중받기 때문이다.


높은 지위에 대한 욕망이 이렇게 강렬해진 이유는 사람들의 속물근성 때문이다. 속물의 일차적인 관심은 권력이며 세대에 전달된다.


속물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픈 바로 자신이다. 자신과 비슷한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그것이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


행복의 비밀은 기대를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조상들보다 훨씬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으며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못하는데서 오는 끝없는 불안을 안게 되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신분제 사회가 아니라 능력주의 체제라고 한다.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진 것이다.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어떤 동지애가 이룩된다 해도 노동자들은 그 지위가 평생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철학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술은 지위로 인한 우리의 근심을 놀린다.


정치는 우리가 노력하더라도 평안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한다.


기독교는 우리가 추구하는 지위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보헤미아는 돈이 없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재규정한다.


알랭 드 보통이 제시한 해법은 지위라는 것을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라는 도구로 재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평안에 이르게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작가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이걸 인식하고 안하고의 차이는 분명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알랭 드 보통의 스타일이 맘에 든다.


물론 인식하고 안하고의 차이가 현실에서는 별 의미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불안과 함께 살고 있고 살 수밖에 없는 우리는, 불안에 휩싸이거나 회피하지 말고, 그 불안을 다르게 볼 수 있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방법은 불안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감정들에도 적용 가능할 거다.


인생이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p27

어른이 된다는 것은 냉담한 인물들, 속물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인물들의 행동은 지위에 대한 우리의 불안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p58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


p64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개인은 사회의 탄생 전부터 존재했으며, 오직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 사회에 합류한 것이고, 보호를 대가로 타고난 권리를 내주기로 동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p82

우리는 적은 것을 기대하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도 있다. 반면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학습을 받으면 많은 것을 가지고도 비참할 수 있다.


p119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진다.


p268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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