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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Jan 18. 2020

보이지 않을 때도 중요한 게 진짜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이 멀어버린다면, 그래도 아마 주위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내 주위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작가는 이런 상상을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럴 거야’라고 생각할 만큼 현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1부는 눈이 머는 전염병이 시작되자 정부가 정신병원을 수용소로 만들어 사람들을 격리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내용을 다루고, 2부는 모든 사람이 눈이 멀게 되어 수용소 밖으로 나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모든 사람이 눈이 멀게 된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먹는 문제다. 통조림 같은 완전 조리 식품을 먹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닭 같은 가축이나 감자 같은 식물을 키워서 먹어야 하는데, 키우는 것도 문제지만 불로 조리할 수 없으므로 생식을 해야 한다.


두 번 째는 위생이다. 처음에는 화장실이나 풀밭에 가서 볼일을 보려고 노력하겠지만, 물도 나오지 않고 거기까지 가는 것도 너무 힘들다. 좀 있으면 아무 데서나 해결하는 사람이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지나가다 오물이 묻을 수도 있고, 더 큰 문제는 묻은 오물을 깨끗이 씻을 수도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가장 일반적인 생존 방법은 믿을만한 사람들과 그룹을 조직하는 거다. 조직은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본능 같다.


이 소설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모든 사람이 눈이 멀지만 단 한 사람만 눈이 멀지 않고 이 모든 상황을 보고 느낀다는 거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 오롯이 감정 이입된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떡할까? 내가 눈이 보인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할까? 남편이 다른 여자랑 자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기분은? 그리고 그걸 또 이해하고 보듬어주고,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여기서 혼자 볼 수 있는 의사 부인은 마치 메시아 같다.


두 번째는 남자들의 찌질함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수용소에 사람이 늘어나고 식량이 줄어들자, 원래 장님이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그룹이 식량 배급하는 권력을 장악하고, 그걸 미끼로 여자들을 성 노예로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남자들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냐고 여자들의 자발적인 희생을 강요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그것을 방조하는 남자들의 침묵이 결국은 지옥을 만든다. 이 상황을 극복하는 건 남자들의 도움이 아니라 각성한 여자 스스로다.


작가는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지금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게 돼도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고 있다.


소설에서 누군가 이름을 묻자 이렇게 답한다. “내 목소리가 바로 나요. 다른 건 중요하지 않소.” 눈이 멀어버린 세상에서 이름은 중요치 않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도 중요한 게 진짜 중요한 거다. 사람들은 보이는 세상에서 허상을 쫓으며 진짜를 보지 못한다.


내 목소리가 바로 나요.
다른 건 중요하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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