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청년 Jan 26. 2020

이 세상의 본질은 변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 너머 편, 채사장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채사장 책이 유용한 이유는 어려운 걸 쉽게 정리하는 데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면 무언가 이해를 했다는 착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진정한 이해는 그렇게 쉽게 오지 않는다. 반드시 숙고의 과정이나 삶에서의 경험이 필요하다.


뒤늦게 철학이나 과학에 관심이 가지만 책이 너무 어려워 장벽이 되고 있다. 채사장 책은 그런 장벽을 넘어서 볼까 하는 용기를 준다.


1.

내게 있어 철학이나 과학책을 읽는 이유는 거창하게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 호기심 때문이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현상을 이렇게도 설명하고 저렇게도 설명하는 게 재밌다. 철학이나 과학이라는 게 변하지 않는 진리를 추구하겠지만 세상이나 우주는 항상 변하기 때문에 조금 내려놓으면 자유롭다.


헤겔이 말한 정반합은 바로 이 변화의 원리를 설명해 주는 듯하다. 이 책을 보면 철학도 과학도 이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진리라는 것이 어쩌면 상반된 여러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해하지도 못하고 정반합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런 변화를 발전이라고 진화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화는 발전이 아니고 환경변화에 적응한 결과일 뿐이라고 한다.


내가 볼 때 불교가 이 ‘변화'라는 것을 깊이 있게 설명하고 있는 종교인 거 같다. 고정적이고 영원한 실체는 없다. 이를 ‘무아()'라고 하고,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단순하고 우연적인 조건들이 순간적으로 모인 것뿐이다. 이를 ‘연기()'라고 한다.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니 '연기'의 연은 ‘인연 연’, 기는 ‘일어날 기’, ‘우주 만유가 서로 인연이 되어 생김'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세상이나 우주의 본질 역시 ‘변화' 그 자체가 아닐까?


2.

미치오 카쿠는 ‘마음의 미래'에서 의식이란 다양한 변수들을 이용하여 이 세계의 모형을 만들어 내는 과정, 즉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채사장은 이 책에서 의식이란 내적 세계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사과가 빨갛게 보이는 것은 빛이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을 통해 이것을 보고, 뇌를 통해 재구성해서 인식한다. 여기서 의식은 나를 기준으로 세계를 재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의식이라는 것이 신비로운 이유는 인간은 의식을 통해 하나의 우주나 세계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눈앞의 물질세계가 실재로는 정신이 만들어 낸 신비의 세계이고, 눈앞의 실체가 허상임을, 단지 내 주관의 내적 세계임을 깨닫는 것이라고 채사장은 말한다. 카를로 로벨리도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최신 물리이론을 통해 말한다.


우주가 빅뱅에서 시작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빅 바운스 이론처럼 반복되는 거라면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도,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도 가능하다. 채사장은 윤회는 ‘의식을 어떤 특정 뇌구조에 따른 현상’이라고 정의할 때 무한한 시간 속에 같은 뇌구조가 만들어진다면 발현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같은 뇌구조라고 해서 같은 의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설명이 신선하다.


인간은 의식 때문에 각자가 하나의 우주이고 세계다.


3.

인간은 각자가 하나의 우주이고 세계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그리고 인연은 각각의 우주가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 하지만 이 우주의 본질은 ‘변화’라는 것을 깨달으면 조금 쉬워지지 않을까?



p93

데카르트의 사유는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모든 세계의 증명을 시작한다.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나의 의심과 회의를 통해서이고, 나의 존재 증명이 신과 세계의 존재 증명보다 앞선다. 즉 인간의 이성이 우선이고, 신과 세계는 이로부터 파생되어 증명되는 것이다.


p108

“사과와 세계는 내 머릿속에 있다. 나는 내 머릿속의 이미지를 보고 있다.”

본다는 것은 외부의 사물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머릿속에서 해석된 그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 것이다.


p109

칸트는 모두의 사고 구조가 보편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세계가 개인의 주관에 함몰되는 문제를 극복해냈다. 즉 우리 각자가 자신의 머릿속 세상인 현상 세계만을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현상 세계를 드러내는 사고의 구조 혹은 뇌의 형식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사실은 유사한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의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드러나는 세계도 동일하다.


p122

하이데거가 주목하는 것은 사과가 사과로서 있을 수 있게 하는 그 무엇, 다시 말해 그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 길고 긴 탐구와 난해함을 무례하게 건너뛰어 답부터 말하면, ‘존재’란 ‘드러나 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드러나 있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은폐되지 않음으로써의 ‘비 은폐성'이다. 쉽게 말해서 존재란 숨겨져 있지 않고 그 상태 자체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p127

그림이론이 도달하는 결론은 모든 철학적 문제가 세계와 대응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철학, 종교, 윤리,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신, 영혼, 자아, 도덕은 실제 그것과 대응하는 것이 없어서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런데도 실제 세계와 대응하는 것이 없어서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p148

비트겐슈타인은 수학이 동어반복이기 때문에 항상 진리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동어반복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할 때, 정의하는 말이 정의되는 것을 되풀이하는 특수한 문장'을 말한다.


p189

다윈의 진화 개념은 발전이 아니다. 고릴라도 수십만 년 후에는 진화할 테지만, 그것은 예측하기 힘든 방식으로의 변화일 것이고, 인간도 수십만 년 후에 다른 방향으로 진보가 아닌 진화를 하게 될 것이다.


p354

나의 의식에는 두 종류의 것들이 드러나는데, 하나는 외부로부터 오는 감각이고, 다른 하나는 내면으로부터 오는 관념이다. 이 감각과 관념이 나의 내적 세계를 구성하는 재료가 된다.

의식은 내적 세계를 갖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능력을 통해 구성된 세계의 정중앙에 내가 놓여 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지금 내가, 나를 기준점으로, 세계를 재구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작가의 이전글 보이지 않을 때도 중요한 게 진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