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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Feb 06. 2021

제인 에어 vs 버사 메이슨

Protagonist - Antagonist

우리가 살면서 제인 에어(Jane Eyre)란 여성을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고 오늘까지 오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그녀는 널리 알려진 여성으로 그녀의 모습이 원작인 소설은 물론 답답한 그곳 책에서 나와 영화나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와 장소에서 종횡무진 보여져서 그럴 것입니다. 아, 제가 어린 시절 그녀를 처음 만났던 만화도 있네요. 또한 누가 어디서 그녀를 만났든 그녀를 만난 후 받은 깊은 인상으로 그녀의 스토리를 기록한 독자들의 감상문인 독후감, 에세이, 평론까지 치면 우리가 그녀의 이름을 피하고 살아오기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억하는 한 그녀는 위의 어떤 장르에서 등장해도 그것의 제목은 원작 소설의 제목이자 그녀의 이름인 '제인 에어'였습니다. 혹여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다른 제목을 달 법도 한데 제인 에어는 언제나 그녀 제인 에어였습니다. 그만큼 세대를 이어져 내려오며 눈덩이 구르듯 커진 그녀의 존재감이 흥행에 가장 유리한 이름인 제인 에어 그녀로 불변 고정되었을 것입니다. 이 정도면 그녀는 그녀를 낳아준 여성인 샬롯 브론테에게 엄마에게 하듯 크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샬롯 브론테와 한 피를 나눈 자매임에도 동생 에밀리 브론테는 그녀의 대표작 제목을 캐서린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제인 에어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그녀의 소설 '폭풍의 언덕' 제목은 우리가 다 기억해도 주인공 캐서린은 때론 긴가민가할 때가 있습니다. 만약 에밀리 브론테가 그 소설의 제목을 캐서린으로 지었더라면 캐서린 그녀도 제인 에어처럼 우리에게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작명 안 했다고 해서 풍의 언덕 그 작품의 가치나 평판이 감소되었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버사 메이슨(Bertha Mason)은 누구일까요? 바로 떠올리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확실한 것은 제인 에어만큼은 기억되지 않는 인물입니다. 설사 제인 에어 스토리를 꿰고 계신 분이라 하더라도 버사 메이슨 그녀의 존재감은 주인공 제인 에어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녀 버사 메이슨은 제인 에어의 남자 주인공인 로체스터 백작의 부인입니다.


물론 독자 모두가 바라고 예상하며 기대하던 해피 엔딩으로 이어져 제인 에어는 로체스터와 결혼하게 되니 버사 메이슨 그녀는 방화로 집을 태우고 죽은 그의 전 부인이자 첫 번째 부인으로 남게 됩니다. 그녀로 인해 제인 에어는 기록상 로체스터의 두 번째 부인이 됩니다. 버사 메이슨 그녀가 죽기 전 로체스터의 현 부인으로 불렸을 때엔 그녀는  정신 병자, 미친 여자로 불리고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아니 갇혀 살았습니다. 소설 어디에도 그녀에게서 아름다운 손필드 대저택의 안주인이란 이미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인 작가 샬롯 브론테가 그녀의 역할과 운명을 그렇게 규정하고 펼쳐 나갔으니까요.


소설 제인 에어에서 제인 에어는 주인공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이고, 버사 메이슨은 제인 에어의 반대편에 위치한 적대자 안타고니스트(Antagonist)입니다. 그 둘은 손필드 대저택 한 공간에 있으면서 또 한 명의 중요 캐릭터인 로체스터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사실 딱히 버사 메이슨이 제인 에어에게 적극적인 적대 행위를 한 것이 없음에도 그녀가 안타고니스트인 것은 그녀가 프로타고니스트 제인 에어가 사랑하는 남자 로체스터를 괴롭혀온 존재이고, 그녀가 죽고 나서야 그와의 결혼이 가능했기에 그렇게 정의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녀가 그렇게 광기 어린 불에 타 죽지 않았다면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 두 남녀의 관계도 어정쩡했을 것이고 소설의 결말은 꽤나 난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 제인 에어의 시점시각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는 스토리이니 우리가 알고 있듯 그러한 해피 엔딩은 당연한 것일 겁니다. 제인 에어의 주인공은 제인 에어니까요.



그런데 버사 메이슨의 시점시각에서 제인 에어를 바라보면 어떨까요? 그녀는 과연 태어나면서부터 정신병자였고 미쳐있었을까요? 아쉽게도 우린 그녀의 과거에 대해 아는 정보가 없습니다. 어쩌면 작가 샬롯 브론테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독자에겐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버사 메이슨을 그녀의 분신일지도 모르는 제인 에어의 적대자로 설정해놨으니까요.


10 년도 더 지난 어느 날 무심코 TV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된 영화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봤는데 볼수록, 갈수록 요상하다 싶더니 결말은 제인 에어와 딱 맞닿았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당시로선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버사 메이슨의 이야기, 그녀가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남편인 로체스터를 만났으며 미쳐가고 죽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니 당연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기해서 찾아봤더니 원작은 'Wide Sargasso Sea'로 '드넓은 사르가소 바다'로 번역되는 도미니카 출신의 진 리스라는 작가의 작품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문학적 평판도 꽤나 높아 버사 메이슨의 일대기를 다룬 이 소설은 타임지가 선정한 1923년 2010년까지의 세계 100대 베스트 영어 소설에 뽑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만한 평판이 있었기에 원 제목 그대로 영화로도 제작된 것인데 이런 명작이 국내에선 카리브 해의 정사란 선정적인 제목으로 상영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중간 정도부터 봤기에 제목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버사 메이슨 역을 맡은 배우는 카리나 롬바드로 명화 가을의 전설에서 브래드 피트의 부인으로 출연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배우입니다.



버사 메이슨은 이 소설에선 주인공 프로타고니스트입니다. 모든 스토리가 그녀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반면에 제인 에어는 적대자 안타고니스트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 제인 에어와는 그녀들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드넓은 사르가소 바다에서 제인 에어는 버사 메이슨의 바람둥이 남편인 로체스터가 어느 날 집에 데려온 젊은 여자에 불과합니다. 그녀의 출현으로 인해 그녀를 다락방에 가뒀던 로체스터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이 가중되어 버사 메이슨 그녀는 결국 그녀 운명의 최종 도착지인 죽음을 택하게 됩니다.


그녀가 미친 것은 그녀의 가족력과 로체스터와의 결혼 생활에 기인합니다. 그런 그녀의 병은 로체스터와 결혼 후 고향을 떠나 생면부지인 영국에 온 그녀를 보듬지 않고 방치한 로체스터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로체스터에 의해 다락방에 갇힌 후 그녀의 병이 더 악화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소설은 손필드 대저택에서 그녀의 죽음을 암시하며 끝나므로 버사 메이슨은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의 결혼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사실 원제의 sargasso가 해초류의 일종이라 해서 원제를 사르가소 해초가 많은 드넓은 바다로 해석하는 건 오류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찾아보니 Sargasso Sea라는 고유 지명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카리브 해 동쪽 옆 대서양 방향에 위치한 바다입니다. 특징적인 것은 그곳 그 넓은 바다엔 섬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들이 암시하는 것은 버사 메이슨 그녀의 운명이 어디에도 정착할 곳이 없이 질긴 해초들 사이에 얽혀있는 배와 같다는 것일 겁니다. 더구나 사르가소 는 버사 메이슨이 태어나고 자란 서인도 제도와 그녀가 결혼해서 살고 죽게 되는 영국과의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그녀의 혼미한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다분히 철학적인 제목이라 하겠습니다. 번역 소설 제목은 그렇다쳐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화 카리브 해의 정사는 나와서는 안 될 제목이었습니다.


작가 진 리스는 1847년에 출간된 제인 에어를 읽고 1966년 이 책을 발표했습니다. 아마도 추측건대 발끈해서 이 책을 썼을 것입니다. 백인 영국 사람인 작가 샬롯 브론테, 주인공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에 대한 반감이 그녀로 하여금 펜을 들게 했을 것입니다. 작가 진 리스와 주인공 버사 메이슨은 둘 다 카리브 해 서인도 제도 출신입니다. 빅토리아 여왕 재임 시기 대영제국의 깃발이 전 세계를 밟아 나간 그 시기에 로체스터는 식민지 대농장주의 딸인 버사 메이슨의 재산을 노리고 그곳에 와 그녀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혼 후 로체스터가 그녀를 그렇게 부당하게 대우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껴 같은 여자로서  땅의 후손인 진 리스가 이 책을 출간했을 것입니다. 물론 당시 제국주의 영국의 식민 정책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진 리스 그녀가 그녀의 소설에서 가장 먼저  일은 잊혀진 버사 메이슨 본명을 찾아주는 것이었습니다. 로체스터에 의해 바뀌었지만 그녀의 본래 이름은 앙트와네트였습니다. 책에서 그녀는 줄곧 이 이름으로 불립니다. 물론 로체스터도 처음엔 카리브 해에서 백인 아버지를 둔 혼혈로 태어나고 자란 이국적인 그녀를 매우 사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파국 위기까지는 관리하지도 막지도 못했습니다. 그럴 의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와이드 사르가소 씨이는 제인 에어에 대한 제3세계의 반란성 소설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구의 세계입니다. 다큐멘터리같은 논픽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듯이 말 그대로 소설을 쓴 것이지요. 창조주인 소설가의 상상력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인물들과 그가 설정한 그들의 엮인 관계로 스토리가 펼쳐지는 픽션이기에 이 두 작품을 연계하여 심하게 감정을 이입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누가 뭐라해도 제인 에어는 시공을 초월한 인류의 보편적인 불멸의 문학 작품입니다. 저의 경우는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 흥미로운 비교 포인트가 아직까지 살아있어 이렇게 시간을 할애해서 글을 쓰는 것이겠지요.


두 작품 모두 공통적으로 여성 작가, 여성 주인공에 기반한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크지만  다른 시점시각에 따라 완전히 반대로 묘사되고 평가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러므로 제인 에어에 천덕꾸러기인 버사 메이슨이 이렇게 다른 시각과 시점에선 주목받는 주인공이 되듯이 우리 어느 누구도 그렇게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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