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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Jul 08. 2021

주인공. 같은 시공간에서의 만남

여행 정보 없는 여행 책 22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손뼉을 마주치며 부르던 동요의 가사처럼 오늘 바라보는 경포 해수욕장의 빛깔은 초록빛이다. 동해라고 하면 짙은 남색이나 깊은 파란색만을 떠올렸는데 오늘은 모래사장 가장 가까운 곳에 예쁜 초록빛이 있다. 그리고 초록빛 바닷물 끝자락에 하얀 레이스 파도가 달려있다. 화려한 드레스 자락이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듯 하얀 레이스 파도가 밀려와 사그라들기를 반복한다.  


파도가 다녀간 곳은 반드시 고운 모래 도화지가 만들어진다. 아이들은 파도를 약 올리듯 얼른 달려가 발자국을 찍고, 약 오른 척 파도가 발자국을 지우러 달려오면 연신 싱글벙글 까르르 도망을 간다. 오늘 바다의 주인공은 장난꾸러기 아이들과 파도인 듯하다. 늘 움직이고 웃고 떠들고 노는 아이들과 늘 움직이고 쏴~ 촤르르 소리를 만드는 파도는 참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다.



오후 내내 내려다보던 경포 해수욕장을 짝꿍의 손을 잡고 걸어본다. 여기저기 아름다운 폭죽이 끊이질 않고 터진다. 아름다운 폭죽이 준비되는 순간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처럼 빨리 터져주기를 기다린다. 잠시 폭죽 심지에 불을 붙이는 긴장된 시간이 지나면 퓽~ 폭 타다닥 작고 예쁜 불꽃이 여기저기 제 모습을 드러낸다.


낮 동안 이 공간의 주인공이었던 아이들은 포근한 잠자리에 들었고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던 파도는 여기가 바다라는 것을 알리듯 소리만 채워줄 뿐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깜깜한 밤하늘에 색색의 불꽃이 주인공의 자리를 꿰찼다.



경포 해수욕장에서 불타오르는 폭죽의 불꽃은 참 운이 좋다. 예전에 살던 집 앞 작은 놀이터에는 밤이 되면 10대의 마지막을 즐기는 아이들이 폭죽을 터뜨리며 고요한 주택가를 시끄럽게 만들었었다. 잠시 후 울리는 경찰 순찰차의 사이렌 소리,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는 경찰의 경고 메시지, 파도를 약 올리던 아이들처럼 경찰을 약 올리듯 낄낄거리며 꽁무니를 빼는 아이들. 그 놀이터에서의 폭죽은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이었다. 그런데 이곳 강릉 경포 해수욕장의 폭죽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불꽃이니 참 운이 좋다. 꼭 한 번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깜깜한 밤하늘과 함께.


낮의 주인공이 사라진 자리에 밤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그러나 누가 더 멋지다고 비교하여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연히 파도와 아이들은 그 시각 그곳에 있었고, 밤하늘과 폭죽의 불꽃도 그 시각 그곳에서 만났을 뿐 더 멋진 주인공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것도 기다린 것도 서로를 채근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같은 시공간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단지 같은 시공간에서 조화를 이루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서로의 존재에 집착하지 않고, 주인공으로 시선을 끄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만나서 즐겁고 아름다우면 그걸로 족할 뿐 더 오랜 시간 주인공으로 같이 있자고 서로를 붙잡지 않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상담실에서 서로 자기가 맞다고 서로에게 요구하고 이끌려는 마음과 행동들과 마주한다. 한 발 옆으로 비켜서서 보면 다 맞음이라 그저 서로 다를 뿐인데 자꾸만 서로에게 틀렸다고 서로를 고쳐보려 애를 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인 것처럼 상대의 인생의 주인공은 상대이므로 한 번쯤은 그저 받아주는 너그러움도 좋을 듯하다.  

 

같은 시공간에서 잠시 만나 조화를 이루어 주인공이 되는 것처럼 내 주변의 인연을 귀하게 받아들이고, 집착하지 않고 만나 즐거울 수 있도록, 내 주변의 인연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아이들에게 하얀 레이스 파도가, 폭죽의 불꽃에게 깜깜한 밤하늘이 집착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준 것처럼.     



[photo by 짝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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