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테니스 선생님이신 라제시 써가 여분의 바이올린이 있으면 줄 수 있는지 물어보신다. 아들이 시니어 되면서 특활활동으로 바이올린을 배워보려고 한답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예, 썰! 물론입니다.!
아들 졸업후로 잘 안뵙게 되어 거의 4,5년만에 만났다.
라제시 선생님과의 인연은 어언 18년이나 되었습니다. 큰 아들이 4학년 인가에 테니스를 방과 후 활동으로 신청해서 배우는데 거의 파리 잡는 수준이었습니다. 앞으로 댄 강보에 두 돌 된 아가를 데리고 더운데 앉아서 큰 아들 응원하곤 했는데 아무리 봐도 못맞추니 미안해서 시원한 주스팩을 몇 번씩 돌렸던 기억이 납니다.
테니스 치다가도 동생 보려고 땀 흘리면서 활짝 웃으며 달려오던 큰 아들!
둘째는 집에서 아빠가 골프 연습하는 것을 보고 한 살 생일에 받은 플라스틱 골프채를 휘두르는데 아무래도 폼이 범상치가 않습니다. 아빠보다도 연습 매트의 구멍에 볼을 잘 넣는 것이에요. 집중도가 참 대단했습니다. 당시 타이거 우즈가 골프계에돌풍을 일으키던 차, 둘째를 골프신동으로 키워볼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른손잡이인데 남편이 왼손잡이라 방향을 다르게 치는 것을 보고 배워서 왼손잡이 어린이 골프채가 필요한 것이에요... 싱가포르 공항이니 한국 여의도 골프숍 등으로 다니면서 왼손 골프채를 찾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봐도 안 구해집니다... 해서 골프장 캐디가 만들어 준 왼손 골프채 하나를 들고 당시 골프 치던 남편을 따라 몇 번 골프장 다니고 시리포트에서 연습하곤 했었지요.
초등1,2학년인듯 하다... 개인교습받는 장면
재능이 있었습니다. 따라 하는 재능, 눈썰미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학교에 들어가면서 테니스를 시작했습니다. 혹시 테니스는 오른손으로 칠 테니 오른손잡이로 굳어져서 골프를 오른손잡이로 만들려고 말이지요. 그런데 첫날부터 참 잘합니다. 공을 딱딱 맞추는 거예요! 선생님과의 길고도 질긴 인연의 막이 올라가는 순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제가 여의도의 테니스장에 테니스를 배우려고 당시 80년대 중반에 비싼 돈 주고 테니스채와 신발 등을 구입했는데 두어 번 갔다가 도저히 안 맞아서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이건 뭐 맨날 폼 잡으라고 쉐도우 연습하는 것인데 정말 재미가 없고 따분하고... 시간 아깝고 돈 아까운 상황이 되어서 그만두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인도는 처음부터 선생님께서 공을 주세요. 그럼 학생이 공을 맞추는데 잘 맞으니 얼마나 재미가 있습니까? 선생님께서도 이런 학생은 처음 봤다면서 싱글벙글 좋아하셨지요.
일취월장이란 말이 있습니다. 졸업 때까지 쭈욱 테니스 학교 대표로, 주장으로 테니스를 쳤습니다.
인도의 대표적 테니스선수인 리안더 패와 쏨데브와 같이 찍은 사진들, 5학년때 였던 것 같다.
처음에 라제시 써와는 학부모와 선생님으로 만났기에 저는 무척 어려웠습니다. 특별 과외를 부탁하는데 과외비 말씀을 안 하시더라고요. 사실 바산트 밸리 학교에서 선생님 과외는 금지랍니다!
저는 선생님 형편이 안 좋은 것을 알기에 성의껏 매달 과외비를 챙겨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저의 정성과 열의를 아시기에 우리 아들을 잘 가르쳐주시고 사랑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덕분에 울 아들은 DLTA에 가서도 인도 대표 선수되려는 사람들과도 테니스를 같이 칠 기회가 있었고 한국 테니스청소년 대표팀이 오면 같이 어울릴 기회를 매년 가졌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꿈나무 테니스선수들,인물보고 뽑는지 다들 인물이 훤하다. 이번 강원도에서 시합이 열린다고 아들도 초대받았다고 하는데 갈수 있으려나... 2인이상 집합금지라서...ㅎ
물론 인도를 대표하는 유명 테니스 선수들과 사진 등을 찍기도 하고 인도 테니스협회장이신 칸나 씨와도 인사를 나누고 크리켓도 같이 보면서 다과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우리아들이 어렸을 때 영원무역의 덕다운을 잘 입었거든요. 남 주기 아까울 정도로 따뜻하고 좋은 제품이어서 선생님의 늦둥이 아들에게 입으라고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도 갑자기 오신다고 해서 클라크에서 비싸게 사서 파티용으로 2,3년 신던 신발과 휴스톰의 마스크 5매 세트, 디왈리 때 선물로 받은 유리그릇 세트 등을 준비해서 바이올린과 같이 드렸습니다.
갑자기 오셔서 쌩하니 가셨다.ㅎㅎㅎ
거의 20년 세월을 같이 본 사이인데 이젠 좀 나이 들어 보이십니다. 머리숱이 줄었지만 등에 칼 차듯 라켓 두자루 맨 포스는 여전하시네요...ㅎㅎㅎ
아들은 코로나 전에 인도를 자주 왔다 갔다 했는데 선생님과도 가끔 테니스를 치면서 선생님께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해서 드리곤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다른 학부모들은 과외를 받으면서도 따로 과외비를 안주는데 저희가 맨날 챙겨드리니 항상 고맙다고 하시고 저희는 여유가 되면 많이 드리고 싶었는데 남편이 사업한다고 하다 보니 여유가 사실 없더라고요... 항상 미안한 마음.
맨날 털털거리는 작은 스쿠터를 40여분 타고 오셔서 아들을 주말마다 지도해주셨습니다. 졸업하면 오토바이로 바꿔드려야지 하고 남편과 얘기하곤 했는데 그것도 막상 때가 되니 흐지부지 되더라고요. 약 2만 루피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3만 5천 루피 정도 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아들이 잘되면 더 좋은 것으로 바꿔주겠지요.ㅎㅎㅎ
바이올린은 중국의 스코트 제인데 3/4 사이즈고 참 괜찮은 바이올린입니다. 아들이 쓰는 것은 최고로 구해주려는 부모의 맘이거든요. 마침 G현이 없는데 챙겨드리려고 해도 델리로 와서는 바이올린 현 가는 데를 모릅니다. 가네시선생님께 여쭤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4/4 사이즈의 한국 바이올린은 바이올린 명장이 만든것이고 지인에게서 받은 것이라 제가 사용하려고요... 과거 팔기 뭐해서 필요한 학생들에게 빌려주곤 했습니다.
공연후 이모저모
고학년이 되어서도 바이올린을 꼭 치곤했다. 오케 연습하는 모습
아들이 현재 갖고 있는 바이올린은 할머니께서 정기 적금을 탔다고 천만 원짜리 바이올린을 사주라고 하시는데 한국에서 좋은 바이올린을 찾으니 천만 원짜리는 턱도 없더라고요. 그런데 가네시 선생님이 콜카타에서 이탈리아와 독일 바이올린을 가져오셨습니다. 독일제는 영 모양도 별로에 소리도 그냥 그랬는데 이탈리아제는 소리가 쩡쩡 울렸습니다. 당시 2백5십만 원 정도로 옛날 바이올린을 구입한 것이지요. 예후디 메뉴인이 인정했다는 표딱지가 붙어있습니다만 일단 소리가 쩡쩡 울려서 좋았습니다. 트리니티 8단계(아마추어 최고 단계)까지 마쳤고 지도자 과정을 시험 봤는데 안됐습니다. 가네시선생님께서 아들을 좀 시기해서 잘 지도 안 해주신 듯 한 생각이 듭니다.ㅎㅎㅎ
바이올린으로 오케스트라 활동을 몇 년간 했는데 가네시선생님께서 아들을 믿고 '델리 커뮤니티 오케스트라'라는 것을 만들어 다년간 리더로 활약했습니다.
이 년 전 공항에서 짐이 너무 많아서 놓고 갔는데 제가 가서 주려고 작년에 델리로 가져왔더랬어요... 그런데 집에서 울고 있습니다.
테니스와 바이올린은 우리 막내의 학창 시절을 함께 한 두 벗입니다. 오늘 아침에 다녀가신 라제시 선생님으로 인해서 추억여행을 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