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ychang 강연아 May 14. 2020

그리움이 묻어나는 음식 , 빈대떡

간단 빈대떡 만들기

저는 빈대떡을 부칠 때마다 한국의 큰아들과 헬싱키의 둘째 아들이 떠오릅니다. 두 아들 모두 빈대떡을 너무 좋아했거든요.

두 아들이 졸업할 때까지 인도 사립학교와 17년간 인연을 맺었는데, 오전 7시에는 스쿨버스가 오기에 6시 15분부터 깨우기가 시작됩니다.
인도친구들과 다른 점이 아침밥을 먹고 가는 것이라면서 나는 거의 20여 년간 6시 전에 일어나 아침을 챙겨 버릇했습니다. 물론 전날 해둔 국에 밥 말아서 조금 먹고 가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꼭! 먹고 가야 한다고 밀어붙인 엄마의 말을 잘 들어준 자식들이 새삼 고맙습니다. 잠이 덜 깨서 5분만!이라고 중얼거리던 아이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다른 반찬을 하는 것 보다도 빈대떡을 구워서 입에 넣어주면 잘 일어나는 것이에요. 구수한 빈대떡이 아직도 꿈나라를 헤매는 와중에도 신세계로 느껴졌는지, 입을 우적 거리면서 잠을 깹니다. 숱하게 빈대떡을 만들었지요.

결혼 전에는 빈대떡이란 식당에서만 먹는 것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결혼 후에도 직장 다니고 미국 다녀오고 그러느라 음식 만드는 것에는 여전히 문외한이었음에도 시어른이 이북 출신이라 명절 때가 되면 맏며느리로 빈대떡을 많이 구웠습니다. 남편도 어려서부터 어머님을 도와서인지 잘 굽더라고요.

인도에 온 지 22년 차입니다. 여기에는 콩 종류가 무진장합니다. 메주 만드는 콩부터 병아리콩, 캐시미르 붉은 콩까지... 두 종류도 많습니다. 달 Dal 이라고 하는데 너무 종류가 많아서 뭐가 뭣인지 처음에는 잘 몰라서 헤맸더랬어요. 녹두는 뭉달 Moong Dal이라고 합니다.


한국서는 빈대떡 만들려면 전날 밤 물에 푹 담가 놨다가 껍질을 거피하고 갈아서 만듭니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듭니다.
그러나 인도의 뭉달은 거피가 되어 있고 30분 이상만 물에 담과 놓았다가 갈면 끝입니다. 물론 김치랑 돼지고기, 숙주, 파와 고추 등 꾸미를 잘 넣어서 만들려면 그것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긴 하지요.

여기는 여름이 길고 너무 더워서 오이 토마토 가지 양파 외에는 한국서 보던 야채가 없더라고요... 지금은 여러 가지 박도 보이고 호박도 있고 몸에 좋은 여러 여름 야채를 요리에 많이 응용합니다만.


인도에 살고 있다는 핑계 하나로 모든 절차를 확 줄여버렸습니다. 그래서 소금만 넣어서 부쳐도 양념장에 찍어서 잘 먹고 신김치 쫑쫑 썰어서 부쳐내도 잘 먹고 겨울철에는 파와 고추를 신나게 많이 넣고 부치고 숙주를 집에서 키우게 돼서는 숙주도 데쳐서 양념해서 넣고 부쳤습니다...

만드는 법도 알립니다.

1. 뭉달을 한 컵 정도 물에 담가 놓는다. 좀 넉넉히 500그램씩 해놓아도 좋습니다. 소금 약간 넣어 갈아 놓습니다.
2. 파 썰고 김치 썰어서 참기름에 무쳐놓고 숙주는 물 약간 넣고 끓여서 숨 죽으면 참기름, 소금, 마늘로 조물조물 무쳐놓습니다. 고추도 식성에 따라 썰어 넣으셔도 됩니다.
돼지고기를 썰거나 갈아서 소금, 후추 양념 후 볶아 넣어도 되는데 요즘은 고기 없이 먹습니다. 식성에 따라 베이컨 등을 넣어도 됩니다.
3. 1과 2를 섞습니다.

4. 기름은 넉넉하게, 한 국자씩 프라이팬에 놓고 지글지글해지면서 기포가 생기면 그때 한번 뒤집어 줍니다. 되도록 여러 번 뒤집지 말고 누름 개로 누르지 말 것.ㅎ
5. 2번 야채가 없는 경우에는 뭉달에 소금만 조금 넣어 갈아서 기름에 부쳐내도 맛있습니다. 이경우 한 스푼씩 떠서 부치니 곱더라고요.

항간에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가 단백질과 지방 복합체니까 인도인들은 고기는커녕 달걀도 잘 안 먹는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채식으로만 만들어도 맛있습니다.

양념장에는 마늘과 양파, 고추 등을 조그맣게 쫑쫑 썰어서 양조간장과 식초, 고춧가루를 넣어 만들어 놓습니다. 보통 만들기가 무섭게 아이들과 남편이 얼마나 잘 먹는지 예쁘게 자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큰 아들이 3년간 첸나이에 있는 대학을 다녔는데 방학을 맞아 돌아올 때 축하상에는 꼭 등장했던 빈대떡, 돌아갈 때마다 손에 들려 보내는 음식에도 빈대떡 몇 장이 꼭 자리를 차지했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한국에 가서 친정어머니께 별미라고 빈대떡을 부치면 인도에서 코 박고 먹던 그 맛이 안 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모든 물자가 풍부하고 외식에 입맛이 깃들여져서 자연스러운 맛이 와 닿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ㅡ

남편과 요즘 인도 봉쇄령, 락다운 3.0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택연금. 집콕 세월이 50일째입니다. 잘 지내다가도 기분이 처져있는 날에는 기분전환용으로 빈대떡 부칩니다. 남편과 자식들과 엉덩이 쳐들고 서로 경쟁 붙어서 먹어대던 과거를 생각하면서 서울서 군대 생활하는 큰아들과 헬싱키에서 나 홀로 삼끼 해결하고 있는 막내아들을 그리워합니다.


외지에서 태어난 막내아들은 특히 대한민국 정체성을 어찌 심어줘야 할지 고민을 했었는데요, 어려운 이야기 할 것 없이 우리 토속음식 좋아하고 잘 먹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저로서는 가족의 정을 느끼게 하는 한국의 맛! 빈대떡입니다. 글쓰기 한 김에, 오늘 남편과 둘이서 빈대떡 한 접시 부칠까 합니다. 맛도 좋고 영양도 있고... 만들기도 쉬운 추억의 요리입니다.

(락다운 초기에 시장을 못가서 집에 있던 호박과 양파, 녹두만으로 만들어 먹은 빈대떡)

이전 13화 달 프라이, 인도식 녹두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