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가 레슬링 선수 같아"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다 맞춰준다.
-안 좋은 일은 혼자 간직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어렵고 거절해도 마음이 계속 찝찝하다.
-남들의 시선, 행동, 말투에 쉽게 상처 받는다.
칭찬받기 위해서, 인정받기 위해서, 관심받기 위해서 착한 사람이 되었다.
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으며 지나가는 사람의 눈빛, 웃음소리만 들어도 나를 향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욕하지는 않을까 하루를 돌아보며 내 행동과 말을 의심했고 사과와 감사, 칭찬의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진심 없는 가식으로 살았다.
왜 그랬을까? 잘 모르겠다. 어릴 적 맞벌이를 한 부모님으로 인해 친척집을 다니며 눈칫밥을 먹고살았던 탓인지 원래 내 성격이 그런 것인지. 딱 한 가지의 이유나 사건을 꼽을 수는 없다. 살면서 여러 환경에서 영향을 받았을 테니까.
아무튼 자존감이 매우 낮은 채로 살았다.
어느 날은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쉽게 화를 내는 나를 보면서 착한 척하느라 힘들게 살고 있다고 느꼈고, 이게 변화의 계기가 된 시점이었다.
이후에도 점점 깨달음을 얻게 해 준 사건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내 블로그 글을 보며 어떤 사람이 칭찬 댓글을 남겼다. 난 괜히 멋쩍어서 민망할 정도로 부정했다.
"아니, 저 같은 사람이 무슨요~ 그런 말 들을 것까진 아니에요."
그 사람에게 호되게 혼이 났다. 칭찬도 받을 줄 알아야 한다고, 왜 기분 좋은 말을 그렇게 거절하냐고 했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칭찬에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알게 돼서 오히려 고마웠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두 번째 충격받았던 일이 있었다.
학교에서 친구가 문제 푸는 법을 물어보길래 알려줬더니 고맙다며 먹을 걸 줬다.
별거 아닌데 받는 게 어색하고 이상해서 1초 만에 돌려주었다. 그 친구는 갑자기 화를 냈다.
"더럽니? 왜 고맙다고 주는 걸 안 받아?"
그게 아닌데.... 마음만 받아도 충분한 건데....
다시 생각해보니 기분 나쁠 만도 했다.
'아 도움을 받은 사람은 고마움을 표시했는데 그걸 거절하면 무안하겠구나.'
성인이 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싫어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점점 놓게 되었다. 아직도 날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약간 쓰라리긴 하지만, 뭐 어쩔 수 없다.
자존감이 점점 생겼지만 여전히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부당한 일에 화를 내는 건 어려웠다.
어느 날은 알바를 하는데 무슨 일인지 어떤 직원에게 외모 비하 발언을 들었다.
"허벅지가 레슬링 선수 같아, 바지가 터지겠네."
???아니???
지금 이런 말을 들었다면 얼굴을 바로 찌푸렸겠지만, 그땐 화나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속으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내가 정말 미웠고 싫었다. 잘못은 그 사람들이 했는데 오히려 스스로를 문제 취급했으니.
가만히 참고 듣는 게 더 착한 사람이라 믿었고, 또 무서웠다. 누군가 날 욕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 이후로 항상 누군가에게 맞춰서 사는 삶에 드디어 진절머리가 났다. 이럴 거면 왜 태어났나 싶었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이렇게 소모해가며 사는 게 싫고 지겹고 재미없고 답답했다.
나를 스스로 사랑하고 아껴주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자존감 높이는 방법이 있는 책도 보고, 자존감 높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을 관찰했다. 언제나 내가 우선이고 어떤 것도 나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일기도 쓰고 속으로 되새겼다.
남들의 시선이 유난히 신경 쓰이고 괴로울 때는 인터넷 어디에서 본 글을 떠올렸다.
나를 아는 사람 10명 중에
1명은 날 좋아하고
2명은 날 싫어한다
7명은 관심이 없다
내가 어떤 짓을 하더라도
날 싫어하는 두 사람은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날 좋아해 주지 않으니
그런 사람에게까지 사랑받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출처 : 웹툰 여중생 A
읽고 또 읽고, 말하고 또 말했다. 나를 사랑하자. 나를 아끼자.
아직도 가끔은 자존감 없는 내가 튀어나와서 지나가던 모르는 사람이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면 내 탓인가 느끼기도 하고,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 때문에 어떤 사람이 날 미워하지 않을까 후회하는 날도 있지만 괜찮다.
이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