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다지만, 정말 그럴까? 강아지나 고양이는 우리보다 빠른 시간 속에서 살고, 몇백 년 동안 썩지 않는 플라스틱은 우리보다 느린 시간 속에서 살고 있음을 떠올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존재에게는 1년이 너무 짧게 느껴지는가 하면, 또 다른 존재에게는 1년이 지극히 느리게 흘러간다. 시간의 본질은 하나일지 몰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은 각자 다르다.
이처럼 시간의 흐름과 가치는 상대적이다. 그리고 이 상대성은 우리가 시간을 평가하는 기준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시간을 사회적 기준과 개인적 기준, 이렇게 두 가지 관점으로 평가한다.
사회는 우리에게 특정한 나이대에 해야 할 일을 요구한다. 10대에는 공부하고, 20대에는 대학을 다니며 취업을 준비하고, 30대에는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기준은 나이를 숫자로 정의하고, 그 숫자에 맞는 ‘표준적인 길’을 제시한다.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시선을 받기도 한다. 예컨대,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로 학생 시절의 시간 가치를 평가하는 것처럼.
하지만 개인적 기준은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힘들게 얻은 학위보다 자유로운 여행에서 얻은 경험이 더 값질 수 있다. 또, 짧은 시간이더라도 매 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 오래도록 평범하게 사는 것보다 더 의미 있을 수 있다.
살면서 우리는 사회적 기준과 자신의 개인적 기준이 충돌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때 개인적인 기준 충족을 선택하는 게 너무 큰 도전이고 도박이라 생각되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우선 사회적 기준을 맞추려 한다. 이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난 이게 누굴 위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 결국 사회도 개인과 개인이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진 집합체인데 그 속에서 개인들이 사회의 눈치를 보는 게 웃기다는 생각 한 번쯤 해보지 않나? 개인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를 개인이 눈치 보며 행복을 포기하다니. 모순적이지 않나? 그러니 표준화된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을 나쁘게 보는 사회적 시선은 잘못된 것이다.
그 길이 모이면 그것 또한 하나의 사회적 방향이 될지도 모르는데, 성급히 비난하는 건 멍청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사회적 기준을 따르는 것이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행복과 너무 멀어진다면, 그 기준을 맹목적으로 좇는 것이 과연 옳을까?
아마도 답은 중간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개인과 사회가 충돌하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루는 방식. 내가 원하는 삶을 살면서도 사회 안에서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길.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우리는 늘 그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결국,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다. 그 시간을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보낼 것인지, 아니면 내가 진정 원하는 방식으로 보낼 것인지는 오롯이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시간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