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욱하고 말았다.
수많은 육아서와 콘텐츠들,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넘쳐나는 정보들. 우리는 그렇게 한 아이를 잘 키워보기 위해서 꽤나 노력을 하고 있다. 아직도 밤에 수유를 해야 하기에 (자의 반, 타의(그녀) 반) 잠을 설쳤고, 첫째는 예민한 기질 덕분에 둘째가 태어나고는 다시 퇴행이 돼 통잠을 또 집어던졌다. 첫째가 1시간에 한 번씩 깨기도 했던 시기에는 반 정신 나간 사람처럼 표효하며 남편을 붙잡고 흔들었다.
'잠 고문이 가장 고통스러운 고문 이랬어. 난 전쟁 포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어!'
천사의 얼굴을 한 아기가 나에게 이렇게도 큰 사랑과 또한 인생의 새로운 역경이, 아니, 이렇게 힘들 줄은 또 몰랐다. 안 그래도 한평생 수면장애를 가지고 있던 나에게 잠을 못 자는 것이란 너무 고역이었다. (아, 나 때문에 우리 애들도 그런 건가)
10살쯤부터 한 달에 한 번은 꾸었던 꿈속에서 항상 나는 머리만 잘려서 유리통에 들어있는 예언가였다. 세상이 멸망한 후 모든 인류는 한 빌딩에서 살았고, 나는 예언을 할 수 있기에 권력을 가진 자들이 소유하여 맨 옥상층에 놓여 머리만 남긴 채 그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다. 그 감옥을 빠져나가기 위해 눈알을 굴리는 동력까지 이용하여 유리통을 깨트린 후 굴러가다 옥상 밖으로 떨어질 수 있었는데, 꿈에서도 나는 나의 이름을 외쳐야 깰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생각나지가 않는 것이다! 이 꿈은 적어도 3년은 꾸었던 거 같은데, 요새 비슷그므리한 줄거리를 가진 영화가 꽤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린 나이에 왜 이런 꿈을 꾸었던 건지는 성인이 된 후에도 의아했는데, 거의 활자중독이었던 내가 닥치는 대로 읽으며 어른들이나 읽는 책도 읽었던 게 문제였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기질과 끈질기게 나를 방문했던 여러 정신적인 역경들을 배워가며 소아 스트레스가 얼마나 지극 했을지 안 탑 깝 기도 했다. 부모의 사랑의 언어는 내가 바라던 언어와 달라서 우리는 많은 불통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따듯한 위로를 원했던 나는 2명의 일하시는 도우미 분들과 조부모님의 손에서 키워졌다. 악몽에서 깨 방문을 열고 엄마 품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다음 날 일본에서 온 바이어들과 미팅이 있던 엄마는 문을 잠그고 주무시는 버릇이 있으셨다.
또다시 돌아왔다. 가장 덥고 극성수기인 7월 말, 모든 숙소는 비싸서 갈 데도 없고 갈 수도 없는 그 시기. 그냥 어린이집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 밑에서 노는 것밖에 할 게 없는 이때, 하필이면 모든 국민이 쉰다는 이때, 방학이 찾아왔다. (혹은 모든 어른들은 아이들의 방학에 맞춰 휴가를 낸거겠지)
우리도 한 때 이 방학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하지만 이제 난 방학이라 쓰고 패닉이라 읽기로 하였다.
무려 세 달 전부터 한창 에너지 넘치는 5세와 8개월 아기와의 10일이 두려웠다. 각종 브레인스토밍 결과, 그래도 바다에 한번 놀려주고 싶었고- 역시나 단지 안 놀이터에서 버텨보기가 가장 말이 되었다. 올해부터는 그나마 바닥분수가 틀어져 있어 다행이었다. 더러운 물이니 결코 안심하지 말라는 사인은 읽어도 마음을 비워보며, 이제 자기도 기어 다니겠다고 칭얼대는 건지 숨이 막힐 만큼의 날씨가 분명 힘들 아기가 몸부림치는 걸 겨우겨우 안 아내며 기다렸다. 육체가 힘들어지니 정신도 나약해져 여서겠지만. 그러면서 점점 별거 아닌 일에 떼를 쓰며 우는 목소리로 칭얼대는 첫째의 목소리가 너무나 듣기 힘들어진다. 방학의 모든 스케줄은 첫째의 즐거움과 신남을 위해서 계획 대고 돌아가고 있는데, 아이는 얼마나 엄마와 동생이 고생하는지는 안중에도 없나 보다. 자알 놀다가 서로 기분만 상한다. 재밌다고 웃어대며 반달같이 둥그러질 눈을 바라보고 싶어 이 노력을 쏟아부었는데, 아이의 입술이 그 달이 기운 것처럼 쳐져 삐죽 댄다.
아빠는 바다보다는 산과 계곡에 가족을 끌고 나가셨다. 뉴스에 나오는 해운대 바다는 검은색 고무 튜브가 빼곡히 둥둥 떠 있어 들어갈 곳도 없어 보였고, 피서철 바가지요금에 관련된 기사는 항상 나왔다. 바위에 붙은 고동을 잡아 국도 끓여 먹고 바늘로 빼먹기도 하고, 깨끗한 민물고기 잡아 매운탕 끓이고. 판판하고 널찍한 돌을 주어다가는 삼겹살도 끓여먹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계곡 물에 수박과 맥주병을 띄어 놓고 그늘 밑에서 낮잠을 자기 위해 정처 없이 국도를 운전하다 사람 없는 계곡을 찾아다녔다. 묻으면 띠기 힘든 모래를 터는 것보다는 매끈하고 색이 예쁜 돌을 주워서 돌무덤을 쌓았다. 배를 쭉 눌러서 내장을 빼내고 물고기를 손질해서 통에 넣으면 아빠가 잘 돕는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밤에 나오는 고기를 잡는다는 아빠 뒤를 쫏아가며 학교에서 쓰던 붓을 씻는 미술 물통처럼 생긴 플라스틱 통에 민물고기를 넣고 찰랑거리게 물을 채웠다. 까맣게 그을리다 못해 타버린 등과 어깨는 차갑게 얼린 감자를 강판에 갈아 붙이는 게 오이 마사지보다 나았다. 유일하게 엄마보다 기억 속에는 의외로 아빠가 남아 있는 순간이다.
방학은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카톡에 '야 매일이..' 까지만 타입을 했는데 자동 완성 기능이 '지옥 같다'를 권유해준다. 깜짝 놀랐다. 이거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반영된 건지 찾아보기까지 했다. 내가 그렇게 부정적인 말을 해댔는지 다른 채팅 창들도 열어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챙겨주는 듯해도 갑자기 성질을 내던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는 사춘기가 시작한 때부터는 아예 피하기 시작했다. 내 부모의 싫은 모습을 가진 부모는 아이에게 되지 않겠다 다짐하며 아이를 낳았건만, 보고 배운다는 말은 무섭게 작동하기도 한다. 약간의 여유와 기본적인 욕구(잠 혹은 식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의 인간은 동물적인 생존의 본능을 발휘하나 보다. 여하튼 공격적이다. 무릎을 안고 풀이 죽어 훌쩍이는 나의 첫사랑의 들썩거리는 등 뒤에 한 손에는 유리병 안에 머리를 들고 다른 손에는 아코디언 같이 접혔던 하얀 물통을 들은 어린 나 자신이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도 차마 닦지 못한 눈물자국이 여러 갈래로 나 있다. 아마 난 그 아이를 먼저 꼭 안아줘야 했나 보다.
‘알았어, I’m damaged already. 너무 미안해, 안 내고 싶은데 화를.. 또 내게 돼.’ 남편에게 또 변명하듯 해명했다. 이미 부서져 있는 나를 통해, 가장 너답게 완벽한 네가 태어났다. 그런 네가 나를 또다시 안아주고 사랑한다 해줄 때 나의 안에 작은 아이도 네가 안아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