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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라 Oct 24. 2022

찬 바람이 불고 너는 아프고

역병이 돈다는 그 시기가 다시 찾아왔다. 처녀였을 때 가장 애정 하지 못해 했던 가을이란 청명한 계절은 더 이상 따듯한 사케와 어묵 바를 누리는 풍류 많은 기억은 아니게 되었다. 환절기가 가져오는 일명 '역병'의 시기는 어김없이 어린이집을 휘몰아친다. 판교에 사는 내 친구네도 가정보육, 송도에 사는 내 친구네 어린이집은 몽땅 다 독감이랜다. 모가 이리 아픈지, 첫째 때는 아기가 항생제를 먹는 건지도 몰랐는데, 둘째인 너는 백일쯤 됐을 때 이미 코로나까지 띤 'Corona baby'다. 그 자그마한 몸에 얼마나 많은 세균들이 들락날락거리는지, 왜 대체 이렇게 아이를 입원시켜야 된다는 말이 무서운 말인지, 얼마 전 동네 어린이 병원 두 군데를 겨우 찾아야지만, (병실이 꽉 차서 없어서) 너를 입원시킬 수 있었던 정말 아찔한 경험도 하고 말이야. 그리고 아가들은 동네 소아과에서는 조금만 더 아파도 대학병원 아니면 입원이란 두 가지 옵션만이 존재한다는 것도 배우고. 남들은 가방에 시계 산다고 오픈런할 때, 너랑 나는 소아과 오픈 시간 확인하고 있다는 것도 참으로 새롭다. 중이염은 또 뭔지 왜 이렇게 콧물 조금만 돌아도 다시 돌아오고, 내가 잘못해서 네가 아픈가, 내가 못 먹여서 그런가, 내가 좀 더 좋은 병원을 찾아가지 못해서 그런 건가 자책은 두 번째 아가를 키워도 끈질기게 남아있다. 


겨울 냄새가 난 참 좋다. 

폐를 가득 채우는 민트 같은 바람에는 차가워진 온도로 모든 게 소독됐을 것 만 같은 깨끗함이 묻어나는 거 같아. 이쯤 되면 동네 전봇대 옆에 하나씩 생겨 나던 어묵 파시던 노점상들이 반갑고, 동네 슈퍼 진열대에 빨간색 호빵 기계가 반가웠어. 야채호빵 보다 피자호빵이 더 흔하지 않았는데, 하굣길에 돌아오는 길이 아니고 조금 돌아서라도 들렸어. 초등학교 때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던 나는 또 예쁜 코트를 그 위에 입는 재미가 있었지. 빙상 스포츠를 잘했던 학교라 스피드 스케이팅을 배우러 가는 날에는 핫바도 사 먹을 수 있었고. 겨울방학이 기다려졌고, 봉선화로 손톱을 물들이고 첫눈을 기다려보기도 했지. 첫사랑이 이루어진 데서-

너무나도 갖고 싶었던 나만의 방은 부엌 옆에 딸린 조그마한 방이긴 했어. 이층 집에 방은 많은 그런 집이었어도, 봉제공장을 운영했던 우리 엄마는 시골에서 상경한 미싱 하는 언니들에게 이층 방을 다 내어 줬었거든. 구들장은 제대로 깔려있어 집안에서 가장 따듯한 방이긴 했어서, 할머니랑 바느질을 해서 깔아놓은 옛날 두꺼운 이불을 깔고 누워 있으면 삶아 빨은 면 냄새가 올라오곤 했어. 난 그 방에 노란색 커튼을 달아 달라고 했고 그 방에는 이불 한 채밖에 들어가지 않았지. 


이제 친구들과 제법 어울리고, 제법 친구들과 노는 게 제일 재밌어지는 첫째를 보면서 생각이 든다.

저 아이의 가을 추억은 무엇일까, 겨울 냄새는 어떻게 기억이 될까. 내 기억 안의 빛이 바래져가는 추억의 장면들은 언제까지 비비드 한 컬러들일까. 나의 경험과 추억들을 위해 분주히 살아봤던 나의 삶은 이제 너네 둘을 채워가기 위해 빙빙 돌아간다. 6개월도 안된 둘째는 오빠를 위해서 열심히 캠핑에 따라나섰고, 그나마 젖을 물리면 재울 수 있어서 매너 타임도 잘 피해 갔고. 하지만 덕분에 젖순이가 된 둘째는 첫째와는 너무 다르게 이유식 거부가 심하지만, 오빠 노는 거 따라다니니라 제대로 밥을 줄 시간이 없다. 이제는 걸음마 연습도 하고 싶고, 이것 저것 다 만져야 적성이 풀리는 11개월 아가여도 캠핑 가서는 매달려만 있어야 하지만- 로니야 너도 보이니 저 불긋불긋 물들어 가는 산등성이가, 노아야, 넌 겨울잠을 준비하는 숲을 앞으로도 기억하겠니. 커갈수록 더 내 마음대로만 되는 게 없는 게 너의 매일일 수도 있지만, 네가 믿고 의지하던 부모는 점점 더 작아져만 보일 수 도 있지만, 네가 뛰놀던 자연은, 그 자연은 계속 그렇게 조건 없이 너를 반겨줄 거라고.


그리고 이놈의 진짜 역병 (이번엔 의사 선생님도 그냥 바이러스인지 뭔지 모르신다고 하고) 때문에 아이가 입원하면 보호자는 1명뿐만 허용된다. 이름은 가족실이고, 예전에는 온 가족이 그곳에서 생활도 할 수 있었다는데, 가격은 변하지 않았는데 고생은 부모 중 하나의 몫이다. 우리 때는 입원은 수술 같은 거나 해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팬데믹에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조금만 기침을 해도 덜컥 겁이 안 나을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아이들이 번갈아 아픈지 벌써 한 달, 아 그렇게 찬바람이 분지가 한 달이 되었구나. 이제는 붕어빵도 어플을 통해 찾는 다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도통 찾아볼 수 없는 겨울 먹거리로 이 헛헛한 마음을 달래 보아야 싶다. 역시 날씨가 추워지면 살도 포동 올리고, 멘탈이 탈탈 털릴 만큼 병수발이 힘에 부쳐 정말 눈물이 찔끔 나오는 날도 있었지만, 이제 제법 말을 알아듣고 귀여운 짓을 하는 둘째 애교와 엄마가 아프면 속상하다는 첫째 말에 내 어깨를 셀프 허그 꽉- 해주며, 오늘도 하원을 준비해 봐야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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