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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라 Jul 20. 2022

둘째와 지중해 표류 중

#고민종결이되길바라면서

백일쯤 지나면 빠진 다는 머리는 첫째 낳을 때는 비교가 안되게 다 빠져버려서 허옇게 정수리까지 보인다. 한세네 달 지나니 드디어 삐죽빼죽 올라오며 서 있긴 한데, 출산을 하며 머리카락 속 케라틴까지 빼앗겨 버린 건지 왜 이렇게 축 쳐져가지고는... 정말 영 거울 볼 맛이 안 난다. 결혼 전까지 웨이트 트레이닝에 심취해서 웜업(warm-up) 운동으로 10파운드짜리 바를 들고 스쾃 100개, 벤치 프레스 100개, 데드리프트 100개를 했던 과거가 정말 무심하게- 초라해진 체력 때문이지 그렇게 누워있다. 아니 9.1킬로 아이가 왜 이렇게 무거운 건지. 중량을 클리어했던 열정과 패기는 어디로 간 것인가. 남편이 충무로로 직장이라는 전쟁터로 떠나고, 첫째가 어린이집이라는 은혜로운 곳으로 가고 난 후, 라지 킹 침대 섬 위에 둥둥, 끝난 줄 알았던 나의 표류는 둘찌와 함께 또 시작된다.


아이의 머리맡에 놓은 코 안으로 들숨에 아이의 향기가 폐 안으로 들어온다. 달큰한 정수리 냄새가 복숭아처럼 동그란 볼을 타고 내려온다. 그녀와 나는 오직 둘만이 현재 항해 중, 우리의 배는 3개의 방으로 나뉜 전형적인 아파트 구조이다.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 듯한 망망대해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파이가 말하지 못하는 동물들과 여행하는 기분을 상상해 본다. ‘아니 파이가 이래서 그렇게 동물들한테 말을 걸었겠어.’ 아직 득도하지 못해 아가의 괴성을 못 알아듣지만, 그녀가 터트리는 웃음은 바닷물에 절여진 소금기 가득한 얼굴에 떨어지는 시원한 빗물 같은 반가움이다. 우리는 방에서 방으로 이동도 해보면서 이 지루한 듯 멋진 시간을 즐겨보려 노력한다. 아니, 그녀는 분명히 솔직하다. 나와 단둘의 시간을 그녀는 마음껏 기뻐하고 있지만 이미 어른이 되고, 다양한 자극을 원하는 나는 좋기도 하나 입 좀 다물고 진짜 맛있는 커피도 한잔 마시고 싶고, 예쁜 것들이 가득한 공간에 가서 앉아 있고 싶기도 하다.


'둘째는 사랑이죠'를 귀에 박히게 듣고, '야 낳아봐야 알지.'라고 애 둘 친구들은 이야기했었다. 첫째가 만 한 살 반쯤 됐을 때는 남편과 그래도 둘은 낳아 키우자고 말했던 의리상 둘째 가지기를 시도하기로 했다. 1년이 지나고 아무 소식이 없자, 실망감도 더해져 갓고, 과연 정말 둘째를 낳는 게 우리에게 맞는 일인지 다시 타진하게 되었다.


1. 그렇게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진 않다.

2. 주변에 도와주시는 분도 없다.

3. 그렇다고 내 몸이 건강하고, 막 젊지도 않다. (내 기준에서는, 난 만 35쯤이었다)

4. 남편이 일이 많고, 육아의 기여할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다.

5. 맡길 기관이 없다 혹은 비싸다, 혹은 내가 좀 끼고 있고 싶었다. (모두 해당)


인터넷으로 떠도는 둘째를 낳는 기준으로 의하면 하나도 맞는 게 없잖아! 남편은 실무자가 아니니 좀 더 쉽게 갖자는 말을 던지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더해지는 책임이 줄 야근의 가능성을 재보고, 업무량의 증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거 무식하게 애만 낳아놓고 괜스레 첫째 때보다 더 남편과 싸워야 할까도 두려웠고, 산후 우울증이다 모다 겪어야 하는 생각도 끔찍했으며, 첫째 때 응급 제왕수술로 망가진 내 몸도 불쌍했다. (무엇보다 임신하고 생긴 지긋지긋한 비염) 하지만 대체 모가 그렇게 좋아서 저 애 둘 엄마들이 실실 대나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친구가 데려온 둘째 아기와 눈을 마주치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나의 호르몬을 보니, 복잡스러운 마음이 뒤 엉켜 있음을 알았다. 사실, 생명을 내 마음대로 잉태할 수도 없고, 사실, 나는 인생은 어차피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참 몇 개 없지 싶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결정되었다. 우리가 시도해보기로 한 2년이 지났고 나도 우리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했지만 안 생기는 걸 보니 이제 공장 문 닫도록 할게요. 우리 뜻이 아닌가 봐. 난 사실 그다지 육아 체질도 아닌 듯하고, 다시 일을 알아볼 테니 그렇게 알도록 해요. 그리고 얼은 땅이 녹기 시작한 3월에, 선포한 지 3일 후에 둘째를 가졌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산부인과에서는 3주쯤 되었다 하였다.


이런 분들에게 감히 둘째를 추천해 본다.


1. 극한 상황을 즐기며, 자신의 한계를 넓히기 원한다면.

2. 흡사 오지체험 꿈꾸시는 분들.

3. 안 가본 길 가봐야 직성이 풀리신다면.

4. 어차피 왠지 둘은 낳아야 될 거 같은 생각이 이미 자리 잡은 분들, 결국 생각은 시도라도 해야 끝난다.

5. 첫째 때처럼 가장 작고 순수한 생명체와 눈 마주침의 설렘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그녀와의 항해 가운데 낮잠이라는 오아시스를 들른다. 첫째 때는 그 오아시스 마저 정리하고 다음 항해를 정비하니라 정신없었겠지만, 둘째와의 달콤한 시간에 나는 좀 더 누려보기로 한다. 조금 덜 정리돼있는 공간도 이해해 주고, 난 포기한 게 아니라, 남아 있는 시간도 최대한 즐기기 위해서는 정신과 육체의 쉼이 필요하니까. 조금 덜 눈도 마주치기도 하고, 반응도 덜하며, 놀이도 덜 해줄 수밖에 없어도, 어느 정도 그녀는 이미 존재하는 큰 아이와의 시간 가운데서 배우고 자극받으며 여름날 잡초같이 성장하고 있다. 이렇게 첫째 아이도 키웠다며 요새 한창 말을 안 듣는 아이가 내 기대치만큼 행동하지 않아도 덜 서운했을까, 그것도 내 욕심일까.


아기의 눈에 떠있는 별을 바라보며 따라가면 확신에 더욱 가까워진다. 네가 나의 두 번째 아기로 태어 날 수밖에, 나는 두 아이의 엄마라는 게. 처음 아기를 키울 때 고됬던 엄마에게 속한 일들이 덜 야속하고, 덜 어색하다. 뽀얗고 부드러운 살결을 쓰다듬어 주면서 옥시토신이란 선물을 받는다. 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항구로 넘어가 여유로운 식사를 맛보고 싶고, 신상품을 걸쳐보고, 이번 시즌의 패션을 '꾸민 듯 안 꾸민 듯' 입어 보고도 싶지만, 내 배에는 VIP가 타고 있다. 첫 아이와는 캐리비안의 해적처럼 여러 가지 바다를 헤처 나가며 보물을 찾아야 했다면, 둘째와는 그래도 지중해쯤에는 떠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모든 여행과 같이, 이 여정을 통해 나는 나를 조금 더 알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내 인생의 가장 큰 문제의 해결과 정답은 내가 쥐고 있다. 한 배에도 모두 다른 책임을 가지고 잘하는 일을 하듯이, 나는 Picture -perfect (사진처럼 완벽한) 혹은 슈퍼맘은 되지 못한다. 첫째에게 3살까지 영상 매체애는 노출시키지 않았지만, 아이에게 내 감정을 미숙하게 보여주며 심리적인 부담을 주었다. 매번 집이 깨끗이 정돈되어 있지는 않아도 아이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매일 수영장과 놀이터를 들낙거렸다. 그리고 역시나 모든 여행과 같이, 이 여정의 조건과 상황을 떠나 얼마만큼의 좋았냐는 내가 점수를 매긴다. 첫째가 워낙 순했다며, 둘째가 고역이었다는 엄마도 많다. 무엇보다 나의 지중해도 첫째가 이 배를 기분 좋지 않게 타던지, 남편이 전쟁터에서 자꾸 늦어질 때마다 일명 ‘지옥의 바다’로 방향을 틀기도 한다. 애가 하나일 때와는 당연 비교할 수 없지, 둘인데. 늘어난 노동의 양을 다른 부분을 줄이며 상쇄해야 그나마 조금 낫다. 아, 또한 물론 나도 이 항해를 첫째와만 즐기는 상상을 안 해보진 않는다. 그것 또한 너무 아름다운 시간일 것이고 나에게 충분할 수 있었다. But,

몇째를 키우던 이 항해의 키와 컴퍼스는 내가 잡고 있다. 둘째가 생기는 것도, 가지려는 것도, 생겨서 좋은 것도 힘든 것도. 내 결단이었든, 등에 떠밀리듯 시작한 여행이든. 어쩌다 가다 보니 여행이 되었든. 변수도 있고, 좋기도 하고, 고되기도 하는데, 너무 좋기도 하고, 어떤 여행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건 '나'이다.


중요한 건 많지 않다. 나는 두 아이가 잠을 안 자고 먹지 않거나 떼를 쓸 때 정말 분노하고, 남편한테 힘이 든다고 투정을 부린다. 어느 날은 정말 독박에서 도망쳐서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이틀만 있고 싶다.

아가는 고양이같이 혀를 뾰족하게 보여주면서 빨간 실로 꿰매져 있는 진주빛 단추를 입에 넣으려 한다. 단추같이 견고한 코가 씰룩거릴 때 신났다는 걸 알 수 있다. 둥근 눈썹이 출렁이며 아몬드 같은 눈이 나를 찾는다. 나는 표정 하나도 한번 더 지긋이 내 눈에 박아 넣고, 늙어가는 나의 뇌가 잘 간직하길 바라본다. 그녀는 그렇게 움직이고, 경험하며, 자라나고 있다. 지중해를 변한 이곳은 올리브 향이 난다. 내가 정하기로 한 기분 하나로 햇살이 쬐며, 적당한 바람이 불어 배의 방향을 틀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역시나 많지 않다. (전혀 둘째 고민에 답이 되지 않았다면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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