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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라 Jul 15. 2022

프롤로그 #2018 여름

7월 7일

최근에 다녀온 캠핑을 위해 겸사겸사 발코니에 둘 의자 두 개를 사들였다. 요새 나에게는 꽤 사치였지만 (의자는 매우 싸지만) 이렇게 노아가 잠시나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으니 하나도 아깝지 않다. 오늘은 금요일이고, 힛웨이브의 주의가 떠서 저녁 약속은 취소되었지만, 지금 바람이 꽤 괜찮다. 107도나 될 거라더니 벌써 공기가 후끈하긴 하다. 이따 오후에 노아 병원도 잠시 가야 할거 같고 나도 치료를 받아야 돼서 걱정도 되지만.

덕분에 보사노바가 꽤 더 어울리고, 더워야 제맛인.


회사에는 복귀하지 않도록 했다.

아이를 낳고 3주부터 감행한 재택근무에 지인 엄마들은 뭐하는 짓이냐며 걱정을 많이 했지만 난 나를 과대평가했다. 그 후폭풍은 6개월이 다 돼가는 요새 몸에서 더는 못 참겠다는 반응으로 계속 나에게 경고를 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언제 돌아올 거냐는 눈치가 계속 있었지만, 아직 엄마 젖 없으면 다 싫은 갓난쟁이를 두고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계속 자택은 하되, 버는 양은 확 줄었고, 아마 이렇게 내 커리어는 결국 끊어질 것이다.


그냥 더 덜 쓰는 방법을 몇 년 고수할 수밖에 없겠다. 아기용품은 안 사 줘봤더니 부부 둘 다 더 어깨가 처지는 기분이어서, 외식 한 두 번 덜하고 필요한 건 사기로 했다. 더 안 살 옷이나, 우리의 취미 생활은 이미 다 쪼일 만큼 쪼여놨다. 육아는 장비빨 아니던가…

노아를 맡기고 일도 갈 수 있고, 이제 모유도 끊을 수도 있지만- 이것도 사실 다 내 욕심인 거다. ‘난 울 엄마가 낳고 이틀 만에 가사 도우미 아줌마한테 맡겨놓고 일 나갔데, 그게 상처야’라는 멘트와 나의 행동을 방어하는 것은 사실 결국 변명이다. 모, 애를 낳아보니 근데 알겠다. 이거나 저거나, 다 괜찮다. 이 엄마나, 저 엄마나- 그녀들을 할 만큼 극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을 것이다. 아기와의 하루가 고즈넉하고 여유로워 보일 수도 있으나, 피 터지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겠다.


남편은 산타모니카로 이직을 할 것 같다. 괜찮은 건축 스튜디오라 매우 축하해줄 일인데, 지금은 5분인 출퇴근 시간이 앞으로 최소 3시간은 될 걸 생각하니 사실 짜증이 먼저 앞섰다. 남편은 자신의 꿈을 펼치는데, 나는 갈수록 일은 말할 것도 없으며, 애한테 매인 몸에 아무도 몰라주는 아줌마만 되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더 쪼그랑탱이만 돼 가는 거 같았다. 결혼 전에 자신 있게 외쳤던 희생하는 사랑은 무색한 입장이었으리…


아버지한테 문자가 왔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노아는, 큰 영광이니 받아들이라는. 아빠는 무신론 자면서-  반칙이다 싶었다. 안다- 내 아들, 내가 만들어 낸, 내 속에서 나온, 상상 이상의 육체적 고통을 참고 나온 이 아이를 내가 사랑하지 않을 리 없다. 용 솟구치는 호르몬이 주는 이 모성애는 참으로도 놀랍고 신기한 감정이다.

단지, 그냥 좀 힘들어서 투정 부려본 거다.


아마 더 독박은 될 것이고, 못 참아내고 한국의 친정으로 잠시 도피할 수도 있겠고, 모르겠다 닥쳐봐야 알겠다. 지금은 저녁에 잠깐 빙수를 지인이 사 들고 올 수 있고, 아침에는 초콜릿 먹으라고 갖다 주는 지인이 올 수 있는 이곳이 우선 살만하니깐. 그렇게 생각해보니, 많이 감사할 부분은 역시나 있다. 어쨌든 나는 그래도 오늘 눈을 떠 이 오동통통한 손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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