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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라 Jul 13. 2022

친정 엄마와 자궁에 대한 궁금증

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는 오늘 같은 날엔 길이라도 깨끗해졌으면 좋겠다. 도시의 소음이 빗소리에 가려면서 뿌애지면, 뒷배경에 틀어놓은 재즈가 더 선명히 들리기 시작한다.


아기들이 물에서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숨을 쉴 수 있다고 했다. 지난 거진 10개월을 물에서 지냈으니까.
 나는 엄마 배 속에서 어땠을까,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귀를 담그고 힘을 빼고 누우면 몸이 뜬다. 자궁은 이랬을까, 상상을 해본다. 생명이 내 배안에서 자라고 태어나는 과정을 겪다 보면, 내가 아가일 때와 젊은 엄마의 관계가 궁금해진다.

둘째를 가지고 이번에는 딸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21년 동안 같은 나라에서 살아본 적 없던 엄마와의 관계는 '재접근기'가 필요해 보였다. 나와 엄마는 서로의 바운더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언어인 듯했지만, 다른 관념과 생각은 모녀관계에서도 커다란 벽이 되었다. 제일 가깝다고 생각했기에,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크게 다가왔던 불편함과 서운함 가운데 나에게도 딸이 생겼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알게 모르게 두렵기까지 했다. 나의 딸에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까. 언제나 나는 엄마를 가장 사랑하며 원했고, 두려워했으며 의지했다.


'친정 엄마는 사랑이다'라고들 한다.  특히 육아를 할 때는 더욱 말이다. 엄마가 감사하게도 아직 건강하게 함께 하신다면 친정 엄마의 조력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느 정도는 그녀들도 다시 한번 손주를 바라보면 본인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시며 좋은 시간 보내시길 이란 내 편한 생각도 해보지만, 오는 손주 얼굴보다 가는 손주 뒷꼭지가 더 반갑다는 말이 있다며 얘기하는 엄마 말에 괜히 뜨끔해진다. 만약 첫째 육아를 많이  도와주셨다면, 둘째 생겼다는 소식에 그럼 난 이민 준비해야겟다, 라는 우스게 소리도 있으니, 친정어머니들도 분명 즐거운 일만은 아니겠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라에서 나오는 지원금으로 고용한 산후도우미 이모님은, 산모들과 친정엄마는 언제나 가장 크게 다툰다고 귀띔해 주셨다. 나이가 들어가며 더욱 무뚝뚝하게 변해 가는 엄마는 심지어 똑같은 말을 또 하시며 잔소리를 하신다. 아빠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걸 제일 싫어하셨는데, 이젠 비닐봉지 하나도 잘 안 버리시고 쓸 데가 있다 하신다. 세월이 흘러감에 변해버린 모습만이 아닌 왠지 어색한 나의 엄마. 내가 어렸을 때 기억하던 엄마의 모습은 사믓 달라져 있었다.


엄마는 직원이 100명이 있는 회사를 운영하시며 남자 직원도 찍소리 못할 만큼 단호했지만 뒤끝은 없었다. 많은 직원들이 나에게 이모, 삼촌이 되어주며 아이스크림을 사줬고, 퇴사 후에도 엄마에게 안부 인사가 오곤 했다. Boomer(부머) 세대의 교과서 한 페이지 같이 살아온 엄마의 인생. 형제 많고 자매 많던 과수원집 딸은 배운건 많이 없어도 용감했고 영특했다. 꿈 많던 그녀는 서울 후암동에 있는 큰 언니 집으로 상경하여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자기 밑에 있는 동생들을 뒷바라지하였다. 퇴근 후 꽁치 한 마리를 100원에 깎아서 사 가지고 해방촌 언덕을 넘어 집에 가면서는  언제나 부자가 될 꿈을 꾸었다 한다. 25살에 결혼 후 의류 제조 사업을 하며 성공가도를 달렸던 엄마는 항상 너무 바빴다.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어 밤늦게 돌아온 안방의 문은 잠겨 있었다. 언제나 잠이 모자랐던 엄마는 도우미 아주머니 두 분과 할머니 두 분에게 삼 남매의 육아를 맡기고 잠을 잤다고 한다. 잠이 모자라서 그랬는지 유독 잠에 민간한 엄마가 그렇게도 야속했는데, 또 나를 닮아 잠이 예민한 첫째 덕분에 5년 동안 통잠을 자본 적이 없는 나는 역시나 그렇게 잠에 민감하다. 닮고 싶지 않은 모습은 기어코 닮아버리게 하는 DNA가 제일 야속하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림일기를 쓰면 부모님께 확인을 받고 그 옆에 엄마가 답글을 써주는 걸 받아오라고도 했는데, 우리 엄마는 항상 서류 결재 내듯이 사인을 하고 날짜를 썼다. 소풍을 갈 때 김밥을 가져가야 된다던 당일 베개 맡에는 십만 원짜리 수표가 놓여 있었다. 김밥집에서는 잔돈이 없다고 김밥을 팔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혼자 다 먹은 척 벤치에 앉아 있던 기억은 아직도 임팩트 있게 남아 있다.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고, 포기한 적도 있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거 같았지만, 그녀만의 코드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나의 딸을 바라볼 때 나의 절절함이 그녀에게도 있었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먹고사는 게 바빴던 시절이라 덜 했을까 싶기도 하다.

 

이유식을 잘 먹지 않는 둘째를 먹여보기 위해 육아템을 들였다. 숟가락을 짜면 바로 이유식이 나와서, 잡고 먹을까 했다. 실리콘 부분에 음식 냄새가 배어 있다 하니 엄마가 물에 담가놓으라 한다. 살림해본 적도 없는 엄마가?라는 의심했지만, 반나절 담가 두니 어느새 냄새가 빠져있다. 물은 냄새를 없애는구나. 집에 들어와 하는 뜨거운 물의 샤워가 지친 하루의 고됨을 앗아가듯이, 물은 가꾸고, 보호하고, 도와준다.


물에 잠긴 귓가에 고요함이 들린다. 들리지 않는 듯 들리는 소리에 눈이 감기고 나는 어떠한 힘을 쓰지 않아도 된다. 적당한 따듯함이 나를 잠식하고 나는 편안할 수 있다.  엄마의 심장소리도 이렇게 들렸었을까, 나는 그녀의 밭에서 가꿔진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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