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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라 Jun 22. 2022

잘 시간도 없는데 브런치 작가는 왜 하는지

#내적관종 #ENTP

엄마는 시간이 없다.

아니, 엄마의 시간이라는 게 없다. 내 시간을 가진다는 황홀함을 엄마가 되면 정말 뼈가 저리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오롯이 내가 원하는 그 순간에 소변을 천천히 볼 수 있다는 그런 소소함부터 시작해서. 잠을 제대로 못 잔다는 건 다들 아실 테니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첫째가 이제 5살이니, 난 만 4년 반을 못 잤다. 원래도 잠이 들기 어려운 사람에, 부엉이 과로 일이나 시간을 보낸 나는 내리 8시간을 자본 게 손에 꼽는다. 그래서 3시간 수면이 사실 괜찮다는 책도 찾아보며 나는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었다. 책에서는 쓸데없는 강박이라 하는데, 그래도 통잠을 잤을 때의 희열감이 존재한다. 애가 잘 때 자라 하지만 요새 안 그래도 고립된 기분과 싸우는 엄마들이 어떻게 그냥 잘 수 있을까.


그다지 사람이 MBTI로 딱 나뉠 수 없다 믿지만, 요새 너무 판쳐서 그런지 너무 재미있잖아!

본인피셜(내가 믿기에는) 나는 당신과 약간의 시간을 보낸다면 80% 정도의 확률로 당신의 MBTI를 맞출 수 있다. 그만큼 내가 포용하기보단 판단하는 인간인가 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P(Perceiving)이라 하는데 J(Judging) 형인 듯하고, E(Extrovert)라 하지만 지극히 내향적이기도 하다.

브런치 작가도 사실 남편에게도 왠지 부끄러워 말하지 않았지만 2년인가 전에 한번 떨어졌었고, 22년 5월 첫 번째 글을 답답한 마음으로 마구 써 내려간 후 바로 응모 누르기를 하고 덜컥 작가가 되어 버렸다.

마음을 털어버리고 싶어서 썼던 글로 작가가 되니 내가 왜 작가가 되고 싶나 다시 고찰해 본다.

경험, 생각, 기준, 영감 등을 나누자니 너무 내 속이 들키나 싶어서 싫기도 하지만, 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라는 흉측함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나 싶다. 싫을 건 무엇인가 좋자고 하는 건데. 삶이 소모적이고 이기적이지 않게. 담담하게, 사랑하기에. 당신에게 어떻게든 위안이 되었다면, 누군가에게 쓸모없는 시간 낭비가 아니질 않겠나.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 것.


유년시절 무척이나 내성적이었던 난 체육 시간만 되면 아이들 앞에 서는 게 싫어서 배가 아프다며 혼자 있던 빈 교실에서 책을 읽었다. 항상 오후였던 그 시간, 햇살이 사선으로 부서지며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으로 휘날리던 하얀 커튼.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에코 되어 울려 퍼지는 그 공간을 사랑했다. 밤에는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있다며 엄마 몰래 변기 위에서 책을 읽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장 친했던 언니는 아마도 이십 대였던 거 같은데 책 대여점을 뒷방에서 아기를 키우며 운영했다. 그 언니는 내가 애기도 봐주고 급할 때는 카운터에서 책도 스캔해주는 게 좋았나, 초등학생이었던 나를 친구처럼 대해주고 같이 성당도 데려가 주었다. 처음 성수를 손가락에 묻혀 성호를 긋는 걸 해봤을 때 최대한 자연스럽게 손을 흔든 기억이 난다. 그것 말고는 언니는 이제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나네, 미안.. 아. 책이 너무 좋았다. 제일 좋은 꿈은 책장에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가득 꽂혀있는 꿈을 꾸는 것. 항상 그 책을 꺼내서 읽으려면 깨서 약 올랐었다. 워낙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여서 6년 내내 다녔던 사립초등학교에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얼굴을 익히시는 편인데, 나를 알아주시는 분은 6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던 국어 선생님 한분이셨다. 당시 쓴 시, 민들레 꽃 홀씨 되어- 였던 거 같다. 민들레가 홀씨가 되었을 때, 여행을 떠났고 결국 대지의 품에 안겼다는-를 아이들 앞에서 읽으라 해주실 때, 항상 조용히 구석에 앉아 드러나길 싫었던 나의 마음에 뭉개 뭉개 무언가가 차올랐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첫째를 낳기 전 1주일까지도 나는 골프웨어 회사에서 일을 했다. 브랜딩부터 마케팅, 디자인까지. 아이를 낳을 때 무시 못할 비용을 계산해 보며 내가 가정을 꾸렸다면 적어도 내가 감당하고 싶어 아이를 낳고 1달 만에 재택근무를 하겠다 하였다. 바운서에 아기를 태우고 발로 흔들며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새벽 1시까지 그렇게 작업을 5달을 했다. 그리곤 번아웃이 제대로 왔다. 회사로 복귀하지 않으면 어렵겠다는 회사의 말에 그만두겠다 하였다. 그리고 월드비전의 코리안 부분 마케팅을 프리랜스로 간간이 진행하며 일층에 있던 방이 화장실과 워낙 잘 분리되어있어서 에어비엔비 호스트를 했다. 집이 워낙 큰 회사 건물들 사이에 있어서 장기로 출장을 온 게스트들로 한 달에 2000불 정도로 수익을 만들어 주었다. 그 게스트들은 소통을 잘하고 즉각 요구를 파악해 주는 나에게 고맙다며 다시 장기 숙박을 해주곤 했었다. 월드비전의 일은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 생각하니 적은 돈에도 참 즐겁게 작업했던 거 같다. 정규직을 노려보고 싶었지만, 난 첫째를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다. 내 선택이었다.


나의 선택. 하지만 쌓여가는 친구들의 커리어와 내가 걸었던 너무도 다양하고도 짧았던! 길들이 아쉽기만 했다. 대기업에 10년을 근무한 나의 친구는 출산 후 육아에만 전념하는 것이 너무 만족스럽다 하였다. 그래, 난 아마도 내 날개를 피기는커녕 아직도 비비적 푸득 거리기만 하고 있어서 그런 걸까. 엄마가 누누이 얘기하시는 수억 들여보낸 유학에, 15살부터 해온 미국 유학 생활을 모두와 경쟁하며 그 '성공'을 잡으려 했지만 하루아침에 허니문 베이비와 함께 엄마라는 타이틀은 가슴팍에 팍 달려버렸다.

시스템을 탓하고, 후진 문화권에 살고 있다고 (미국에 당시 있을 시) 욕한 들 무엇하나 결국 인생의 모든 턴들은 내가 틀었던 거니깐. 아직도 아쉬운 부분은 말이다, 내가 북유럽권으로 유학 간다고 하지 않은 것. (거기도 거기만의 고단함이 있겠지만) 나도 넉넉한 육아휴직과 정부가 운영하는 거의 무료의 보육기관들, 그리고 6시간의 워킹 아워를 맛볼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모 그런 상상. 여성과 남성의 월급 차이가 31.5%로 압도적인 1위의 대한민국과 17.7%로 3위를 차지하는 미국에 하필에면 두 뿌리를 내리고 일을 하고. 그 차이가 사실은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하기 때문이라는 부동적이 이유라는 점이 나를 씁쓸하게 하지만 말이다.

다시 한번. 집에서 아기와 온전히 시간을 보낸 다고 한 것 도 나만의 선택.


얼마 전 좋은 포지션이 낫다며 연락이 왔었다. 평소 원하던 회사였지만, 확정된 것도 아니었지만 직감적으로 무엇보다 원하지만 무엇보다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둘째도 결국 매시간 붙어있고 싶었다. 멀리서 보면 더 이쁘고 귀여워 보이는 내 자식이지만, 그래도 너무 안 보이는 건 아까워도 너무 아깝다.

사랑이다 다시 한번의. 머리로는 알지만, 속절없는 사랑. 내 사랑이야기는 그냥 질척됨이다. 엄청 비벼대고 맞대고 냄새 맡고 싶다. 분리불안이 오니 떨어질 수 없지만, 내 마음속 불은 바람이 불며 커져서 다 태워버리기도 한다. 인생의 지금 시점은 위로가 참 고마운 시기였다. 사막 속 오아시스에서 내가 추앙하는 그녀/아기와 있지만 인간은 혼자일 수 없다. 나도 무언가 소속이 되고 싶다. 나도 하고 싶다. 무언가.


결국 내 안의 관종은 나를 흔들어 깨웠고, 홀린 듯이 브런치를 열고 글을 쳐 내려본다.

엄마들의 세상과의 동아줄이 필요하다. 그게 어떤 형태의 것이라도. 친구들과의 수다이던, 새로 찾은 취미이던, 놓고 있지 않는 커리어든. 내가 한 인격체로서의 존재함을 인정해 주는 루트가 필요하다. 그것이 그냥 소모적인 것보다는 어떻게든 긍정적이고 선하며 창조적이면 더 좋겠다는 것은 바람. 그것이 무엇이냐는 앞으로 계속 고민할 주제이고.

샤워실에서 린스 바를 머리에 비비는데 머릿속을 맴도는 여러 문장들이 서로 부딪히며 쿵쿵된다. 좋은 거 있고, 맛있는 거 있으면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나누길 원하셨다. 과거 지인은 잘근잘근 씹어먹는 맛이 있는 글을 쓰고 있다 응원을 보내주었다. 그에게 감사한다. 그렇게 그래도 읽을만한 글도 써보면서, 자아실현도 해보면서, 나를 잊지 않는 엄마가 될 수 있다면 육아라는 일상도 더욱 신명 날 거 같다.  내적 관종은 춤을 제대로 출 수 만 있다면 지금 아이브의 '러브 다이브'를 신명 나게 춰보고 싶다. 요새 인스타에 많이 떠서 또 본거는 있어서.


Ooh, ooh, yeah
네가 참 궁금해 그건 너도 마찬가지 (ooh, ooh)
이거면 충분해 쫓고 쫓는 이런 놀이
참을 수 없는 이끌림과 호기심
묘한 너와 나 두고 보면 알겠지

Ooh-ooh, ooh-ooh 눈동자 아래로
Ooh-ooh, ooh-ooh 감추고 있는 거
Ooh-ooh, ooh-ooh
Yeah, it's so bad (it's so bad) it's good (it's good)
난 그 맘을 좀 봐야겠어

Narcissistic, my god, I love it

서로를 비춘 밤
아름다운 까만 눈빛 더 빠져 깊이
(넌 내게로, 난 네게로)
숨 참고 love dive


-아이브 '러브 다이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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