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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라 May 28. 2022

두 번째 출산 후 6개월, 뻔한 이야기가 싫었다

she/her, 한국 나이로 38살

둘째를 한국에서 낳을 때 난 자연주의 브이백을 선택했고, 10시간을 거쳐 결국 최소한의 회음부 손상과 약간의 탈장, 그리고 담당의가 손으로 당겨서 뺀 태반 말고는 건강히 딸을 바로 내 품으로 안을 수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아이는 나의 젖을 물었고, 한국의 조리원 천국을 동경하며 꽤나 시간을 내어 서 한 리서치와 돈을 써서 정한 조리원에서는 모자동실이 돈이 아까운 일을 직감한 나는 반나절을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조리를 하였다.

1년이 넘어가자 첫째는 한국에 들어와 처음 시작한 기관 생활도 꽤 즐기는 듯하여 다행이었고, 첫째만큼 3년은 내가 오롯이 못 키워내도 둘째도 어느 정도는 내가 키워내고, 첫째만큼 13개월 직수는 못하여도 둘째도 어느 정도 하겠지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지금, 6개월이 된 둘째가 아직도 젖을 실컷 물어야지만 두 번째 낮잠을 잘 때. 마치 운동을 할 마음이 정말이었던 것처럼 하늘색 레깅스에 디카페인 인스턴트 두봉이 들어간 하얀색 텀블러를 들고, 까맣게 타버린 아몬드 파우더로 만든 브라우니를 입에 욱여넣고, 프렌치 최신 팝을 틀은 후 (못 알아 들어서 생각할 때 좋다), 2년 만에 브런치를 열었다.


뻔한 이야기는 참 하기 싫었는데 또 와버렸다, 이 산후 우울증이.

3일 전에 여동생 부부가 미국에서 2주간 방문 후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갔다.

그 애들은 7년간 뉴욕에서 살다가 아이를 갖기 위한 준비를 위해 올해 초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갔다.

여행 중 나와 산책을 단 둘이 하는 시간이 있었던 이라크계 미국인 제부가 물었다.


'미진, 한국에 와서 아이들을 키우니까 좋아?'

'응, 그래도 한국은 정부에서 도와주기도 하고. 아무래도 우리 엄마가 한 번씩이라도 도와주고..'

'그래도 우리는 너희가 어서 다시 미국으로 왔으면 좋겠어.'


DAY1


여동생 가족이 미국으로 떠난 후, 시끌벅적한 집이 다시 아이와 나의 숨소리로만 차게 되고. 마음이. 답답하다. 아차 싶어, 허둥지둥 짐을 싸서 차가 막히는 서울까지, 굳이 사람이 가장 많고 활기 찰 것 같은 성수동으로 차를 몰았다. 친구와 급히 나름 핫플이란 데를 가서 밥도 먹고- 무려 대창 카레 츠케면, 대창도 트렌디한 것을 카레에다가 츠케(차가운) 면으로 먹다니- 사람들이 보통은 80팀이나 줄을 서서 마신다는 카페를 정말 힙한 곳은 1도 없을 듯한 동네 구석으로 칭얼거리는 아기를 아기띠도 없이 안고 1.3킬로를 걸어 찾아갔다. 괘 보람차고도 남들 하는 거 다한 후인데도 아이와 찍힌 사진에 내 눈은 흐리멍덩해 보였다. (거울을 볼 시간이 없어 남이 아이와 내 모습을 찍는 사진을 보아야 내 요새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인다)

집에 돌아와서 집에 있자니 또 답답하다. 마음이 터져 나갈 거 같은데, 이유를 모르겠다.

아니 사실 이유를 알고 있다.

'독박은 결국 독박이야. 한국이라고 육아가 육아가 아닌 건 아니지 모..'


DAY2


내가 루틴으로 삼고 있는 여러 건강한 습관들을 손 놓고 있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긴 시간을 투자해야지 엔도르핀이 나오는 유산소 운동보다는 단시간에 맛을 볼 수 있는 근육 운동이나, 차라리 명상을 겸함 요가라던지.

각종 비타민 섭취와 장내 미생물들이 좋아할 만한 생채소를 곁들인 저탄수 고단백 식단.

혹은 카페인보다 부모님이 밭에서 직접 키우고 말려 주신 작두콩 차라던지. 비염에도 좋다던데.

책을 8장을 읽으면 웬만한 스트레스는 70프로 이상 감소한다던데.

대신에 넷플릭스를 틀고 그린 마더스 클럽 - 한국어 제목은 또 까먹었다, 내 계정은 미국 계정이라 영어로 나온다-를 틀어 엄마들의 이야기를 보았다. 또 오지게 인스타로 틱톡에서 2주 전에 유행했을 릴들을 몰아서 보고. 아침부터 커피는 2잔 마셨지만 놀이터 셔틀 중 한 잔을 더했다.

저녁에는 양심상 갑오징어를 올리브 오일과 레몬, 히말라야 소금, 후추를 더해 구웠는데. (추천)

그것보다 사실 에어프라이어에 돌린 냉동 김말이가 더 맛있더라.


DAY3


인간을 둘이나 낳았지만 아직도 난 내가 뭘 원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는 않다.

아 혹은 생각의 인풋과 행동의 아웃풋이 아직도 엇갈린다.

내가 원해서 했던 출산의 결과는 조금만 걸어도 아파오는 골반 뼈이고, 나름 뉴욕에서 한때 패션을 사랑하고 패션을 공부하며 활보한 거울 속의 추레한 내 모습이다.

아이에게 더 좋을 거라 믿으면 주고 있는 모유는, 차라리 위스키 한잔에 좀 내려놓고 싶은 내 의지를 꺾어버린다.  2주 전에 전화도 한 통화 왔었다. 회사에 좋은 포지션이 나왔는데, 어떠냐는 전화였다. 참 얄궂다. 예전 기록을 찾아보니 첫째 때도 이때였더라. 딱 6개월. 그때도 복귀는 포기하였고 에어비앤비 호스팅과 프리랜서 일들로 연명해 가기로 했다. 그리고 쓴 글이 있던데, 둘째 때는 약간의 일들도 없어졌다.

당근 캐시는 분들만 나를 열심히 찾는 그런 나날들.

내가 삼십몇 년을 열심히 목표로 삼고 살아온 것들이 어 아직 동의 버튼 다 안 읽었는데 영구 계획이 된 건가요? 이런 느낌이랄까. 사실 이 계약서의 특이점은 페이퍼랑 실제가 매우 다르다는 것이지.

너무 영롱하게 빛나는 6개월 된 나의 그녀 옆에 있어서 더 초라해지는 기분일까.


10대에도 무엇을 해야 되나 고민했고,

20대에도 하면서도 갈망했고.

30대인 지금도 결국 찾아가고 있고.

항상 우울함에 대한 고찰이 자주 글과 이어져서 그렇지만. 극적인 기쁨과 채움이 공존하고 있는 참 또 다른 뻔한 이야기니까. 나름 키워드는 육아, 사랑, 문화이기에.  

지금도 배가 고파 계란 3개를 삶아 먹었다. 건강한 선택과 이어지고 있어. 벌써 이 우울 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거야.  그녀의 우주 안에 갇힌 듯이 여행하듯이, 그렇게 6개월 하고도 3일을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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