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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라 Jun 30. 2022

코리아 Monsoon

#동남아인가한국인가

저번 주 토요일엔가부터 시작되었다. 아이가 생긴 후부터 당연하게 집에 두 개씩은 있는 온도/습도계를 보니 습도가 무려 75%, 온도는 27.8도씨. 한국에서 맞는 2번째의 한국의 장마, 몬순시즌. 끈적거리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잠을 설치기 시작한다. 아가/아이들은 적정 온도 21-24도, 습도 40-50% 정도의 완벽함에 익숙해져 있는 귀한 몸들이시다. 그들은 재빨리 환경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그들의 몸은 땀띠와 습진으로 여름을 알리기도 한다. 엄마들은 제습기를 돌리고 온도를 맞추니라 애를 쓰기 시작하고, 하원 후 어떻게 시간을 때워야 하나 고민을 한다. 그리곤 모두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대한민국에 비가 많이 내렸냐고, 이제 우리나라 고유의 나무들도 없어진다고 하는데 생태계가 너무 바뀐다고 말이다. 이 걱정이 우리 모두 조금만 더 환경도 걱정하며 무엇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의지로 이어지길 바람도 가져본다. 아파트마다 편리하게 있는 재활용장에 내려갈 때마다 우리 한 가정이 만들어 내는 어마 무시한 쓰레기의 양에 놀라곤 한다. 왜 이리 모든 건 플라스틱인지, 비닐에 쌓여 있어야 되는 건지. 안 쓴다고 해보는데도 결국 사게 되곤 하니 말이다. 눌러쓰는 편한 통에 들은 제품을 매번 사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가능한 다 비누로 바꿔보기도 하고, 시장에 가서 포장 없이 장을 보기도 하면서, 동남화 되어간다는 대한민국을 너무 망각하지 않으려 애써본다.


21년 만의 한국 생활에 무수한 여름방학을 보내기 위해서 한국에 있었지만, 1년 12달을 살아보니 확연히 계절의 변화가 얼마나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최근 8년을 대부분 날씨가 매우 환상적인, 건조하기도 하지만, 남부 캘리포니아에 살다 왔기에 더욱 대조되었다. 요 며칠 날씨는 뉴욕과 비슷그무리 한 날씨이긴 한데, 대학 생활하면서 사계절의 변화는 오히려 당시 나의 패션에 대한 열정을 더욱 불태우기 좋은 요건이었다. 마음에 드는 빈티지 모피(그 당시 유행) 코트를 찾으러 Lower-east 쪽 샵들을 10시간씩 뒤집고 다녔고 찾아내고 난 후에는 어울리는 부츠를 또 찾아 헤맸다. 한국과 비슷하게 덥고 습한 뉴욕이었지만 한국만큼 눈치 보지 않고 가벼운 옷들을 입을 수 있었다. 스파게티 스트랩 나시도, 가슴도 좀 파인 원피스도, 한국 기준으로 '날씬'하지 않아도 아무도 눈치는 주지 않는다. 비가 올 때면 안 그래도 커피에 미친 뉴요커들은 더 커피를 찾았다. 한국에선 전 붙이는 기름내가 묵직한 장마 공기를 뚫고 나갈 수 있다면, 뉴욕의 장마는 쾌쾌한 메트로(지하철) 냄새를 지울 수 있는 건 갓 내린 깊은 커피의 향이었나 보다. 고인이 된 칼 라거필드가 살았던 Gramercy Park에 있던 71 Irving이라는 카페는 집에서 몇 스트리트 떨어져 있는 나의 최애 공간이었다. 밖에 나와 있는 몇 안 되는 자리를 차지하고 몇 시간이고 앉아 있을 때 많은 모델들과 당대 유명했던 셰프 마리오 비탈리(그의 레스토랑이 맞은편이었다. 유쾌한 그였지만, 미국의 Metoo 시기에 폭로된 사실들에 매우 실망하여 유감스러운)가 취해서 양머리를 하고 트레이드 마크였던 오렌지 크록스를 신고 간다든지, 영화배우 몇을 본 기억이 난다. 조 샐다나(Zoe Saldana)는 정말 그렇게 유명인에게 그렇다고 사인을 해 달라던지 해본 적이 없던 나였지만 인사를 한 기억이 있다. 당신의 work(작품들)을 정말 존경한다고.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한 친절했던 할리우드 여배우.


대학 졸업 후에는 일 때문에 베트남 호치민을 오가며 3-4달씩 살았다. 몬순시즌에는 정말 무섭게 비가 왔지만 오히려 숨이 턱턱 막히는 그 날씨가 풀리는 기분이 있어 반갑기도 했다. 붉은색 메콩강은 빗물에 더욱 불어나 넘실 거렸고, 여인들은 하얀색 농라만 써도 빗물을 피할 수 있었다. 베트남은 커피 수출 세계 2위의 나라이고 프랑스 식민지 역사의 영향으로 커피 문화가 우리나라보다 먼저 자리 잡아 있는 곳이다. 그들이 개발해낸 얇은 스테인리스로 만든 드리퍼로 특유의 향을 가진 원두를 내려 연유를 섞어 마신다. 당시에는 워낙 베트남 물가가 착했으므로 코코넛을 파서 아이스크림을 넣은 디저트도 같이 시키곤 했다. 하지만 역시 기억나는 건 비가 오나 안 오나 마신 통 코코넛. 마담이라고 나를 부르며 띄엄띄엄 한국음식을 곧잘 했던 현지인 주방 이모는 '마담 모 먹고 싶어'라며 나름 메뉴를 신경 써주었고, 난 항상 '코코넛 사와!'라고 당부를 해주었다. 그녀는 오토바이를 타고 장을 봐와서 그랬는지 항상 1개씩만 사 와서 아쉬웠지만 비릿하며 시큼한 어린 코코넛, 더 달큼하지만 꿉꿉한 내도 나는 늙은 코코넛도 다 좋았다. 물보다 더 빨리 수분을 충전시켜줄 수 있는 건강한 음료이기도 하지만 코코넛 안의 야들야들한 meat(코코넛 살)을 파먹는 재미가 있었다. 당시 너무나도 쌌던 Pho는 1불이 안됬던 기억이 있다. 양은 너무 작았지만 섬세한 육수 맛과 풍부하고도 또렷한 각종 스파이스의 노트는 오직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었다. 바로 뽑은 듯한 신선한 쌀국수는 탱글 하지만 부드러웠고, 씹었을 땐 하얀 쌀의 향기가 났다.


1년 반 정도 살았던 중국 하얼빈은 겨울에는 최대 체감 온도 영하 40도를 웃도는 곳이다. 러시아와 가까워 맥주와 소시지가 유명하고, 중국에서 가장 표준어와 가까워 많은 아나운서를 배출하는 곳이다. 또한 북방부답게 감자, 가지, 고추 등의 채소를 많이 먹을 수 있고, 외식을 한땐 양꼬치와 식탁 위의 널브러져 있는 생마늘을 까서 함께 먹었다. 그리고 그들은 훠궈를 사랑했다. 더운 여름철에는 많은 남성들이 웃통을 벗은 채 땀을 흘리면서도 먹었고, 겨울에는 뜨겁게 달궈진 다양한 식재료가 속을 달래주었다. 하지만 나의 중국의 여름 기억은 아주 특별한 날에만 하얼빈 공대 근처에 있던 하마마스라는 샌드위치 집에 가서 먹던 당근케이크이다. 내가 당시 있던 지역은 중심부와는 조금 떨어져 있었고, 영어 선생님으로 봉사를 했던 나의 소소한 월급으론 미국 시리얼 한 박스도 매우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300불 정도의 돈을 지급받아 쓸 수 있었는데, 시내에 하겐다즈에서 먹은 파르페가 20불이란 사실에 적잖이 놀랐었다. 이십 대 후반의 나이에 다시 겪는 타향살이는 한국 음식보다도 그전에 십 몇년의 세월을 산 미국의 음식들을 그립게 하였다. 비가 왔던 그 여름날에도 난 당근케이크를 향해 갈 열정이 있었고, 무엇보다 사소한 행복에도 두근거리는 젊은 마음도 있었다.



목요일은 이제 7개월이 된 둘째와 문화센터를 경험하는 날이다. 아기들이 의례 밟는 첫 사교육의 현장을 나도 워낙 누려보고 싶었다. 유모차로 10분 정도 걸음면 있는 적당한 거리인데, 이게 비가 오기 시작하니 반은 결석하여 썰렁하다. 아기를 데리고 비가 오는 날 차가 없이 이동하는 건 매우 번거로운 일로 여겨진다. 한국에 와서 밭일할 때 설령 고쟁이를 입지만 헌터 부츠로 약간의 흥을 내보자 했던 내가, 부츠를 신고 우비를 입고 유모차는 레인커버도 있으니 걸어서 가보겠다니 친구 엄마가 그건 한국 정서는 아니라 한다. 뉴욕에서 살 때는 그 두 가지 아이템이 매우 유용했고, 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살 때야 이런 날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고, 걸을 일이 거의 없던 우리는 공짜로 세차한다고 좋아했고. 오늘도 비가 와서 걷다 보니 아이들은 장화에 세트로 우비도 다 입고 있는데 확실히 엄마들은 다 샌들에 평소 입는 가벼운 데일리 원피스 복장들이 많다. 나는 이제 아기 덕분에 커피를 느긋이 즐길 수 있는 여유도, 사소한 것을 위해 시간을 많이 투자할 수도, 내 몸에 좋다는 것보다는 아이들에게 줄 건강 간식을 온라인으로 찾고 있기는 하다. 넘실 거였던 그 붉은 메콩강의 파도도 이제는 기억 속에 빛이 바래져 간다. 그래도 비가 온다고 아스파탐이 안 들은 고급 막걸리도 꺼내고, 반건조 오징어도 구워서 청양고추 마요네즈에 찍어 먹을 수 있는 게 한국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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