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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Aug 14. 2018

판타지 영미 장편소설 <백 번째 여왕>

장르소설은 흡입력이 굉장하다. 물론 호불호가 갈리는 것 또한 장르소설이긴 하지만 어떤 한 부분이라도 취향에 맞는다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책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백 번째 여왕>은 '넘기는 재미, 황홀한 순간'이라는 에이치 출판사의 문구가 무척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최근에는 장르소설을 휴대폰으로 끊어가며 읽는 편이라 책 속으로 훅 빠져들어간다는 느낌을 느껴보지 못했다. 오랜만에 결말이 궁금해 새벽까지 책을 놓지 못했다. 이국적인 판타지 소설, 이야기가 촘촘하게 얽혀있어 한순간도 한 눈을 팔지 못하게 만드는 소설을 읽고 싶다면 <백 번째 여왕>이 그 순간을 선사해 줄 것이다. 


<백 번째 여왕>은 고대 수메르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쓰인 영미 장편소설이다. 고대 신화와 판타지가 잘 어우러져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백 번째 여왕>은 '칼린다'라는 소녀의 성장 소설이자 인간과 신의 능력을 받은 자들과의 대결을 이야기한다. 

부모님이 누군지, 자신의 능력을 모른 채 남들보다 조금 모자란 듯 자란 소녀, 칼린다는 대륙을 지배하는 왕의 백 번째 왕비로 소환된다. 왕이 가질 수 있는 왕비의 수는 백 명.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여왕은 더 특별한 존재이다. 다른 소녀들보다 외모나 검술 실력이 모자란 칼린다가 어떻게 왕의 눈에 들어 비라지가 되었을까. 

늘어지는 부분이나 쓸데없는 설명 없이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백 번째 여왕>은 판타지 로맨스 소설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소녀의 매력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보고 그녀를 보호하는 남자 주인공인 데븐 나익 장군. 왕의 백 번째 왕비가 되었지만 칼린다의 마음속에는 그녀를 보호하는 근위대장인 나익 장군뿐이다. 

나는 그가 한 말을 기억한다. 왜냐면 당신이 아름다워서......, 내 마음속에 그대만이 가득합니다. 

<백 번째 여왕>은 판타지 로맨스 소설이긴 하지만 로맨스적인 요소가 많은 편은 아니다. 여왕보다는 전사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비라지인 칼린다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책에는 부타라는 존재가 등장하는데 바람과 물, 불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을 말한다. 제국의 왕인 타렉이 없애고 싶어 하는 악마의 종족인 부타. 놀랍게도 칼린다는 부타들 중 불을 다루는 능력을 가진 버너였다. 물론 그녀는 자신이 버너인지도 모른 채 살아왔다. 이야기는 그녀가 버너임을 일찌감치 알려준다. 그리고 그녀가 왜 버너인지, 능력을 알지 못한 채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그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하나씩 풀어간다. 

하렘을 연상시키는 아내들의 숙소와 왕이 허락한다면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첩의 숙소, 왕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규율, 로마시대의 격투장과 같은 곳에서 벌어지는 왕의 아내와 첩들의 목숨을 건 서열 토너먼트는 불편하지만 그래서 칼린다가 무너뜨리는 장면들이 더욱 통쾌하게 느껴진다. 야만과 마법, 반란, 사랑으로 채워져 있는 <백 번째 여왕>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흥미롭다. 특히 주인공인 칼린다와 함께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나약하지 않아서 좋았다. 

다음 날 출근을 잊고 이른 새벽까지 책을 덮지 못했다. 왜 칼린다는 버너일까, 칼린다와 데븐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칼린다가 버너로 자각한다면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지 등 궁금한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말까지 읽고 말았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고 원인을 알면 속 시원히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백 번째 여왕>은 이제 막 하나의 이야기만을 끝냈을 뿐이었다. 

<불의 여왕>이라는 제목으로 이어지는 2권에서 펼쳐질 칼린다의 모험이 벌써 궁금해진다. 1권에서는 그녀가 성장하고 자각하는 과정이라 버너로서의 능력을 많이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백 번째 여왕>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인 <불의 여왕>에서 본격적인 전사로 활약할 칼린다의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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